물건을 다 싣지 못했다. 처음 겪는 일이다. 460개도 실었던 적이 있는데, 확실히 명절 물량은 부피가 크다. 어떻게든 한 번에 다 싣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추석에 물량이 많은 것은 분명 예상하고 있었지만, 차에 다 싣지 못할 정도로 나올 줄은 몰랐다. 분류장에 한 번 더 들어와서 다시 싣는다면 약 40분 정도 지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이다.
고객들이 회사에서 퇴근하기 전에 물건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심리적으로 나를 충분히 옭아맬 수 있었다. 언제 오냐는 그들의 물음에 나름 시간을 계산해서 말해주지만, 그 시간조차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명절 물량은 무게와 부피가 있어서 배송이 더디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말해놓은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 마음이 조급해진다.
평소보다 시작이 2시간 늦은 상황이었다. 거기에 물건을 다 싣지 못해 다시 분류장에 들어오는 시간 등을 종합하면 약 3시간이나 늦은 출발이었다. 시계를 보며 오늘 배송이 끝나는 시간을 계산해보니 전망이 어두웠다. 최소 오후 10시는 되어야 끝날 것 같았다. 늦은 시간까지 배송하는 건 그렇다 치지만, 문제는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 퇴근할 경우 물건을 전달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곤욕스러웠다.
그렇다고 물건을 이미 순서대로 실었기 때문에 중간에 코스를 수정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이 퇴근한 시간에 전화를 걸어 통화 후 합의하에 지정된 장소에 놓거나 메시지를 보내 배송을 완료해야 했다. 기존에 가봤던 곳은 익숙하게 물건을 둘 곳을 알고 있어서 배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절 특수기 때문에 생전 가보지도 못한 곳에 여러 군데 배송했다. 평상시에는 택배를 시키지 않다가 보내는 쪽에서 주소 확인 후 발송하는 경우가 많았다. 1년 동안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여전히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수두룩했다. 처음 가는 곳은 어렵다. 도로명 주소가 잘 되어 있더라도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도로명 주소를 잘못 접수한 사례가 많고, 고객들은 상호는 제대로 적어 놓지만 도로명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어 아무거나 근처에 있는 것을 선택해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상호나 건물명을 확인하거나, 의심되면 수취인과 통화해서 배송해야 한다. 물론 명절 특수기처럼 너무 바쁜 날에는 전화 통화할 시간도 부족하지만, 지금 시간 없다고 뒤로 미루면 오배송을 하게 된다. 나중에 오배송으로 인해 분실이나 제품이 상하면 변상해야 한다. 시간에 쫓기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해내야 한다. 급하다고 급출발, 급정지를 하면 실어놓은 물건이 쓰러진다. 가뜩이나 꽉꽉 채운 물건이라 높이가 높다. 배송을 하며 물건이 빠지기 시작하면 균형이 쉽게 무너진다.
천천히 이동해야 하며 코스를 잘 짜야 한다. 시간 절약을 하는 길은 경로를 최대한 가깝게 설정하고 실수 없이 배송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했다. 급하게 돌다 보면 빠뜨리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있기에 그렇다. 물건이 워낙 많다 보니 찾는 것도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워낙 자주 보던 물건들이라 대충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만 꼭 1~2개씩 안 보이는 게 나온다. 이런 건 빨리 포기해야 하지만, 그놈의 미련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다.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서 오후 10시 반이 되어서야 배송이 끝나게 되었다. 이렇게 늦게 끝난 것은 택배를 처음 시작했을 때뿐이었는데, 새삼 명절 특수기가 이런 것임을 확실히 알았다. 내게 있어 명절 특수기는 설 연휴뿐이었는데, 그때보다 추석이 확실히 물량이 많은 것 같다. 사과, 배, 전복, 생선 등 풍년이라 그런지 부피 큰 물량이 많았다.
저녁 늦게 배송한 고객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어쩔 수 없다. 모두가 빨리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간혹 전화가 와서 "제 택배는 식품이라 빨리 받았으면 좋겠다"고 문의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고객에게 "오늘 물건의 대다수가 식품입니다"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며 웃어 넘겼다. 가능하면 전화가 안 왔으면 좋겠는데, 무슨 할 말들이 많은지 꼭 통화를 원한다. 바쁠 때 자꾸 신경을 빼앗기기 때문에 배송 시간이 지연된다.
내 물건에만 관심 있고 내 물건에만 집중해 달라는 마음은 잘 알지만, 모두를 납득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객들도 그러한 점을 알고 이해하지만, 그래도 정말 필요한 전화가 아니면 안 했으면 싶다. 어차피 "문 앞에 놓아 달라"는 전화이면서도 꼭 통화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나 또한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통화하겠지만, 시간에 쫓기며 체력적으로 몰리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친절하게 하려 해도 가끔 말을 엇나가게 하게 된다.
그래도 다가올 명절 휴일이 있으니 그때 좀 쉬려고 생각 중이다. 이런 걸 보면 아무래도 주 7일은 불가능할 것 같다. 휴일이 있어야 충전하고 다시 일을 할 텐데, 그런 시간이 없다면 쉽게 지칠 것이다.
이번 명절 특수기를 통해 느낀 점은 단순히 물량이 많다는 것을 넘어, 시간 관리와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객들의 요구에 모두 응답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앞으로는 더 효율적인 배송 시스템을 고민하며 명절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