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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Dec 01. 2024

폭설 속에서 책임을 다하다

440개의 배송과 성실함이 남긴 흔적

폭설이 지나고 배송이 재개되었다. 천재지변으로 하루를 쉬며 쌓인 물량은 평소의 두 배에 달했다. 그러나 폭설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기상청의 예보에 따르면 오후 5시 이후로 5cm 이상의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되었고, 결국 쌓인 물량 중 일부는 다음 날로 넘겨야 했다.


그러니 오늘 배송은 오후 6시 이전에 마쳐야만 했다. 다시 폭설이 시작되면 배송이 전면 중단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일기예보가 빗나가기를 바라며, 폭설이 늦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분주히 배송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우려했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눈은 내리긴 했지만 예상보다 적었고, 이전처럼 쌓이거나 도로를 막는 정도는 아니었다. 내리던 눈은 금세 녹아 사라졌고, 그날의 배송은 큰 무리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날은 바로 다음 날, 토요일이었다. 금요일에는 물건을 하루씩 뒤로 미루며 간신히 배송을 이어갔지만, 토요일은 사정이 달랐다. 일요일이 끼어 있어 더 이상 물건을 미루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미 지연된 배송에 또다시 지연을 더할 수 없었고, 게다가 날씨까지 회복되면서 더는 미룰 명분조차 사라졌다.


더구나 회사는 폭설 속에서도 기사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하루 휴식을 허용하는 배려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배려에 부응하지 않는 것은 도리나 책임감의 측면에서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지연 배송은 회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였고, 고객들이 상황을 이해해 준다 하더라도 날씨가 좋아지고 배송이 가능해진 상황에서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물건이 너무 많으니 생물성 물건들만 배송하고 나머지는 월요일에 보내자"는 것이었다. 그 의견을 낸 사람은 다름 아닌 팀장이었다. 물론 우리 팀의 구역은 배송이 어렵고 지역이 넓어 신도시 지역과는 명확히 다른 차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 팀장의 주장은 이런 지역적 어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애초에 물량이 많았던 그가 이틀 치를 하루 만에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게다가 팀장이 신도시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선택한 저탑 차량 역시 문제였다. 차량 용량의 한계로 한 번에 물량을 다 실을 수 없었고, 부족한 물량을 채우기 위해 분류장에 다시 들어오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월요일로 일부 물량을 미루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무리하지 말고 월요일에 배송하라고 조언했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은 토요일에 배송을 끝내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이 상황에서 나는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가능한 한 토요일 안에 모든 물건을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그것이 나와 회사, 그리고 고객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과연 물건을 미루는 선택이 옳았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즘처럼 배송 속도가 중요한 시대에, 누구 마음대로 물건을 미루기로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폭설이 계속되고 고객들도 그 상황을 이해하는 시점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날씨는 좋아졌고 배송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명백한데, 개인적인 일정이나 사유로 물건을 미룬다면 이는 곧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어떤 동료 형님은 배송이 끝나는 시간이 새벽 3시가 될지라도 모든 물량을 처리하겠다고 결심했다. 재미있는 건, 그 형님이 폭설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먼저 "이건 도저히 못 한다"고 투덜댔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도 회사가 보여준 배려에 부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회사와 이런 방식으로 하자고 따로 약속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스스로 투지를 발휘했다. 그의 태도는 오랜 경험 끝에 내린 결론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단순히 물량을 미루는 것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책임을 다하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분명 "무리하지 말고 건강을 챙기며 일하라"는 조언은 개인적으로 보면 현명한 결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회사에 대한 애정과 직업에 대한 자부심 없이는 이 일을 오래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배송이 힘들고 어려운 지역이라는 이유로 자꾸 외면하기 시작한다면, 결국 모든 배송 지역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일이 싫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내가 스스로 성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동료들의 신뢰를 잃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도 회의감이 들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책임감과 자부심이 없다면, 결국 나 자신이 먼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너희는 그렇게 해라, 나는 이렇게 하겠다"는 식으로 아웃사이더처럼 행동한다면 공동체 속에서 외면받기 쉬울 것이다. 반대로 내가 먼저 노력하고 열심히 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함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가는 성과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런 성과는 단지 일의 결과를 넘어, 팀과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스스로의 성취감과 자부심을 더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국 그날 나는 431개의 물량을 배송했고,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형과 함께 일을 했기에 그 정도였지, 나도 혼자 했다면 다른 형님들처럼 새벽이 넘어서까지 배송해야 했을 것이다. 분명 몸은 고됐지만, 늦은 시간까지 배송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고객들의 문자를 받을 때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폭설속에 배송하신 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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