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화물연대의 파업, 그리고 팀 동료의 부상으로 물량이 폭증했다. 그 결과, 나의 하루 배송 최대량 기록인 440개를 곧바로 경신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무려 462개였다. 이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잘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쉽게 말해, 1톤 탑차에 물건을 빈틈없이 가득 채울 정도다.
일반 택배라면 이 정도 수량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배송 지역이 넓어서 타 택배사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저녁 12시까지 물건을 다 배송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12시를 넘기면 새벽까지라도 배송을 이어가야 할 처지였다.
솔직히 말하면, 부상당한 팀 동료의 물량을 대신 맡아야 하는 상황이 썩 내키지 않았다. 이미 내 배송 물량도 많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물량이 비교적 적은 사람들이 나서주길 바랐지만, 역시나 그들이 나설 리는 없었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이 택배 일을 벗어나 다른 노선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동료의 물량을 맡기로 했다. 도와주는 일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냥 내가 조금 더 하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 앞섰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내게 무리한 선택을 하게 만들지만,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형에게 이런 상황을 말해야 할 때는 나도 참 난감했다. 하지만 사람이 다쳤는데 외면하고 내 일만 할 수는 없었다. 그때 문득, 예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상대방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애매하게 하지 말고, 기분 좋게 해줘라." 그 글귀는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처럼 느껴졌다.
내게 한 지역을 맡기려던 동료 형님이 어느 곳을 맡을 거냐고 물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가장 물량이 많은 단지를 달라고 했다. 앞뒤를 재지 않고 가장 힘든 곳을 맡아 처리하면 내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물량이 많은 곳을 맡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책임을 회피하기보다 확실히 도움을 주는 편이 더 떳떳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결정을 내린 후, 차량에 물건을 빈틈없이 실어야 했다. 평소보다 몇 배는 힘들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할 수 있다’고 다짐했다. 결국, 일이 끝난 시간은 밤 12시. 아침 6시에 출근했으니, 총 18시간 동안 일한 셈이었다.
그래도 이 일은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구조다 보니, 힘든 노동의 피로가 금전적인 보상으로 조금은 위로됐다. 피곤함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보상이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날의 배송량을 절대 다음날로 넘기지 않고 모두 배송했다는 점이 스스로도 뿌듯했다. 늦은 시간에 고객들에게 물건을 전달하게 된 점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일 배송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지만, 나는 언제나 "가능한 한 그날 받은 물건은 그날 배송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싶었다.
많은 기사들이 급하지 않은 물건을 다음날로 넘기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그러고 싶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때때로 고객과의 마찰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토요일에 물건을 받아야 일요일에 옷을 입을 수 있는데 왜 안 가져왔냐", "오늘 생일 선물을 받기로 했는데 안 가져오면 어떻게 하냐" 같은 불만이 쏟아진다.
아무리 기사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도, 고객들은 쉽게 이해하지 않는다. 심지어 전화가 계속 오거나, 기사가 불친절하게 대응하는 순간을 빌미로 끝없는 항의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에, 조금 더 힘들더라도 당일 배송을 고집한다. 고객과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모든 고객이 불만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늦은 시간까지 물건을 가져다줘서 고맙다고 하거나, 추운 겨울에도 수고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해주는 분들도 있다. 이런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 바로 이런 고객들 덕분에, 나는 일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조금 더 진심을 다해 일할 수 있게 된다.
내 옆의 동료는 하루에 일정 수량만 배송한다고 당당히 말하곤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의 모습은 달라졌다. 고객과의 마찰 때문인지, 얼굴에는 짜증과 피로가 역력했다. 그는 옆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계속 투덜거리며 불만을 쏟아냈다. 이전의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고객과의 마찰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여러 상황들이 배송 시간을 지연시키더라도, 결국 최종적으로 모든 책임은 기사에게 쏠린다. 그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아무튼, 요즘 CJ택배의 주 7일 배송과 쿠팡 등의 영향으로 물량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물량이 더 증가하면서 매일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역시 일이든 물량이든 적당한 게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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