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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Nov 28. 2024

천재지변

"눈길 속에서 이어진 고군분투의 기록"

눈이 내렸다. 나는 원래 겨울부터 택배 일을 시작했기에 겨울철 배달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달랐다. 15년 동안 택배를 해온 형님조차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라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다음 날 배송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걱정이 가득했다.


지난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도 도로에서 제설작업이 빠르게 이루어져 금세 눈이 녹아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큰 도로에 제설차가 지나가 염화칼슘을 뿌려도, 눈이 워낙 자주 그리고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탓에 효과가 오래 가지 못했다. 마치 염화칼슘을 비웃기라도 하듯 눈이 금세 새하얗게 다시 쌓이곤 했다.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처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신중히 운전해도 결국 배송을 위해 동네 골목으로 진입해야 했다. 큰 도로에 차를 세우고 수레를 이용해 배송하기로 결심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쌓인 눈 때문에 수레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마치 접착제처럼 바퀴에 달라붙는 눈은 수레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결국, 손으로 하나씩 들어 나르는 수밖에 없었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날씨가 0도와 영하를 오가며 눈이 녹아 바닥에 물이 고이고, 신발은 금세 젖어버렸다. 축축해진 신발을 벗을 수도 없었기에 결국 발을 물속에 담근 듯한 상태로 움직여야 했다. 다행히 극도로 추운 날씨는 아니어서 발이 얼어붙지는 않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이번 눈은 마치 올여름 게릴라성 폭우처럼 쏟아졌다. 하늘에서는 빙수 가루가 뭉텅이로 내려오는 듯 눈이 퍼부었다. 잠시 눈이 멎는 순간이 오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부랴부랴 움직여야 했다. 아직도 배송해야 할 물량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팀 내 단체 카톡방에서는 이런 날씨에 배송은 무리라는 말부터, 오늘은 쉬자는 의견, 점심 먹고 시작하자는 제안까지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하지만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하루 종일 눈이 그칠 기미가 없었다. 기다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게 분명했다. 결국, 눈이 잠시 멎을 때마다 조금씩 이동하며 정차하고, 손으로 직접 물건을 나르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어느 정도 배송을 마쳤을 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눈이 많이 내린 데다 언덕이 가파른 지역에 진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차량으로 접근이 불가능해 보였기에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인근 편의점에 맡기는 방안을 제안해 보았다. 그러나 고객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직접 받겠다고 고집했다.


결국, 고민 끝에 아이스박스를 들고 언덕을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냉장 보관이 필요한 물품이라 내일까지 미룰 수도 없었고, 설령 내일로 미룬다 해도 눈이 더 내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산행을 시작했다.


언덕을 올라가 보니 예상대로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차량으로는 도저히 진입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보급로가 눈에 막혀 고립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제설작업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제설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추위에 집 안에 머물며 손을 놓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눈이 계속 쌓였다가 녹아 빙판길로 변하면 어떻게 하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넉가래를 들고 나와 눈을 치우며 제설작업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추위와 눈 속에서도 묵묵히 움직이며 상황을 개선하려는 이들의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어쨌든 산길을 걸어 하나는 겨우 배송을 완료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한 곳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다.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이 배송지는 두 개의 진입로가 있었는데, 하나는 급경사로 되어 있어 위험했고, 다른 하나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통로였다. 문제는 이 통로의 구조였다. 옆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낮은 절벽처럼 경사가 심한 곳으로 미끄러질 위험이 있었고, 도보로 진입하기에도 눈이 쌓여 무리였다. 결정적으로 이곳에 도달하려면 또 다른 급경사를 올라야 했다.


도보로 물건을 나르려 했지만, 이미 밤 9시를 넘긴 시각에 체력은 한계에 달했다. 내일도 배송 일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이곳의 물건은 급한 아이스박스가 아닌 세무서에서 보내온 문서였다. 배송 불가 사유를 남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곳이 제설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라고 알고 있었던 터라, 왜 이런 외진 곳에 회사를 두었는지 의문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제설은커녕 길조차 정비되지 않아, 스스로를 어떻게 대비하며 일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발길을 돌렸다.


물론 이곳이 완전히 산악지형이거나 아주 외진 시골은 아니었다. 주변에는 공장단지도 많고 유치원 같은 시설도 있으며, 크고 작은 회사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 언덕이나 경사진 도로가 배송을 힘들게 만드는 주된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차량을 몰고 경사를 오르내리며 배송을 이어갔다. 차가 미끄러지면서 겨우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철렁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들이 무사히 배송을 끝내는 모습을 보면 나도 한번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결국 단 한개의 물건 빼고는 모두 배송을 완료했다. 다음날이 되자 천재지변으로 인해 배송이 보류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직까지도 타택배사들은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는듯 했다. 아무래도 신선제품이 많고 하루를 경과하며 문제 생길것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눈길에서의 운전 요령에 대해 깨달은 점이 있어 공유해본다. 이는 내가 위기 상황에서 빠져나온 방법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우선, 자신의 차량이 전륜구동인지 후륜구동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눈길에서의 운전 방식에 큰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승용차는 전륜구동이기 때문에 눈길에서 기본적으로 앞으로만 조심히 진행하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물차는 후륜구동이 많아 상황이 달라진다. 화물차는 앞바퀴가 눈에 미끄러지며 통제를 잃을 경우, 뒷바퀴가 돌면서 차량 전체가 회전할 위험이 있다. 같은 원리로, 승용차도 후진 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차량이 통제를 잃고 미끄러지는 상황이라면, 화물차는 후진으로 빠져나오는 것이 안전하다. 비록 앞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억지로 진행하려 하면 차가 돌아버릴 가능성이 크다. 오늘 나는 후륜구동 차량으로 여러 차례 후진을 통해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빙판길에서 차량 회전이 우려된다면, 과감히 후진을 선택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후진 시에는 백미러와 주변 상황을 세심히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안전은 항상 최우선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눈길 위에서의 하루는 무척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결국 더 안전하고 지혜롭게 나아갈 길을 알려주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쌓인 경험이 결국 나와 모두를 지켜주는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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