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차량을 인계받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 신청서의 저탑·정탑 구분란에는 정탑을 희망한다고 적었지만, 신도시 지역의 효율적인 배송과 주차장의 편리함을 떠올리면 저탑 차량의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 신도시 지역의 80% 이상이 저탑 차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저탑 차량은 선택이 아니라 사실상 필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탑 차량의 좁은 내부 공간, 무릎 멍, 허리 통증 같은 단점들을 이미 들어 알고 있기에, 그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신도시에 진입해야 하는지 스스로 의문이 든다.
더구나 저탑 차량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신도시 지역에 곧바로 배정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신도시는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 아니며, 기존 배정된 사람들도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다. 물량과 도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신규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 한 내가 신도시에 배치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차량을 바꿔도 지금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 회의에서 몇몇 팀장들이 자리가 나면 나를 1순위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언제 그런 기회가 올지는 미지수다. 겨울철 물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쿠팡이나 다른 택배사들, 그리고 경제 불황으로 인해 택배 업계에서도 물량 감소의 기운이 감지된다. 소비가 줄면서 물량이 줄었고,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력을 추가 충원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 보인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며, 신도시 진입은 점점 더 요원한 꿈처럼 느껴진다.
그 와중에 정탑 차량에서 저탑 차량으로 전환한 동료들은 외곽 지역에서 계속 고된 일을 하는 현실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언제까지 외곽에서만 뺑뺑이 돌 수는 없다”는 그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차량을 바꿨다고 해서 신도시로 진입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저탑 차량을 운행 중인 팀장은 오히려 저탑 차량을 타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는 무릎이 멍들고 허리가 아픈 자신의 경험을 들어 고생할 것이라며 주의를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저탑 차량을 유지하고 있다.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진입하려면 저탑 차량이 사실상 필수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팀장의 이러한 경고는 저탑 차량을 신청한 동료들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애초에 그가 팀장을 맡은 이유도 대단지 아파트 구역에서 효율적인 배송을 맡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팀원들에게 그의 경고는 한낱 잔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대단지 아파트는 물량이 넘치도록 쌓이지만, 그 누구도 "물량이 많으니 나눠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무릎 통증과 건강 악화를 겪으며 힘들어하는 팀장을 보면서도, 도움을 제안하거나 구역 조정을 이야기하는 이는 없다. 이곳도 결국 하나의 사회다. 누군가 무너지면, 다른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 할 뿐이다. 팀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지만, 실상은 개인 사업자로서 살아가는 냉혹한 현실이다.
한때는 모두가 부러워했던 대단지 아파트 구역. 효율성과 물량의 풍요로움을 자랑했던 그곳은 이제 팀장에게 건강 악화와 팀원들의 시기만 남겼다. 과거의 선택은 그에게 분명한 기회처럼 보였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자신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팀장의 고충을 보며 한편으로는 연민이 들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곤경이 나에게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쳐 지나간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건 그가 자초한 일이야."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감정을 억누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자초한 일이든 아니든, 지금의 현실이 과연 내 선택을 바꿀 만큼 가치 있는 것인지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그는 진정으로 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방패막이로 삼아가며 구역을 대체했을까? 사람의 본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확답을 내리기 어렵다. 결국 그의 진정성과 의도는 그저 추측할 뿐이다.
한편, 저탑 차량에서 정탑 차량으로 바꾼 동료들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 중 한 명이 다시 저탑 차량으로 돌아갈지 고민하는 흔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저탑 차량에 익숙해진 그는, 혹여 신도시에서 자리가 나면 자신도 그곳으로 가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도시는 배송 시간과 물량 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선망하는 자리다. 물론 나 또한 1순위로 고려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정탑 차량이라는 선택이 발목을 잡으면 결국 나 역시 그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있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나는 여전히 낮은 높이의 차량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 좁은 공간에서의 불편함은 물론이고, 무릎과 허리에 이상이 생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신도시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효율성과 편리함이 약속된 자리라 할지라도, 그 대가가 내 몸과 건강이라면 나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결국, 선택은 내 몫이다. 효율과 편리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와도, 나는 내 건강을 우선에 두겠다는 생각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신도시 진입이든, 지금의 자리든,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그렇다면 그 대가를 감당하며 일할 수 있는 몸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