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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Dec 19. 2024

지원 거절

자기의 일은 자기 스스로

늘 예스맨처럼 행동하던 내게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사회생활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거의 매번 거절하지 않고 지원 업무를 나가곤 했다. 덕분에 평판도 좋아지고,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생기면서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내 노력과 의지와는 달리, 내 주변 사람들, 특히 함께 일하는 형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결국 나와 주변 사람만 지쳐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쩌다 나는 남 좋은 일만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물론 "내 몸만 챙기자"는 태도로 이기주의자로 살게 된다면, 처음에 우려했던 대로 동료들에게 소외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몸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혹은 과로로 병이라도 얻게 되는 날엔, 그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함께 일하는 형이 과로로 쓰러지는 날에는, 그에 대한 책임이나 대처 방법조차 막막하다.

나는 이미 팀에서 가장 어려운 지역을 맡고 있다. 그런데도 나에게 계속 지원 요청이 들어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나보다 훨씬 먼저 일을 끝내는 동료가 그런 요청을 한다는 건 무슨 의도로 보아야 할까? 혹시 오전만 일하고 집으로 가겠다는 생각이라도 품고 있는 걸까?


그동안 거절이 어려워 매번 지원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이번만큼은 거절했다. 같이 일하는 형의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나 역시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지원을 나가면 일찍 끝날 가능성은 희박하고,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운이 좋아야 조금 일찍 끝날 수 있지만, 대개는 낯선 지역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지원 요청을 거절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내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요청은 늘 같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해왔다. 너무 많은 지원을 해주다 보니, 점점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혹시 나를 통해 자신들의 스케줄을 유리하게 편성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이제는 천재지변이나 사고, 혹은 꼭 필요한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지원하려고 한다. 단순히 개인의 물량 처리를 위해 요청하는 지원은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시간도 부족한 데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내 시간을 쓸 이유는 없었다.


"고맙다"는 말만 던지고 끝내는 태도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나는 대가를 바라고 행동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고 외친다. 이번에야말로 거절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거절하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줘야 할 의무를 지닌 사람이 아니다.


다만, 평소에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이 있었다면, 흔쾌히 도와줬을 것이다. 하지만 매번 어려운 지역을 회피하고, 제일 먼저 배송을 나가 자기 일만 끝내는 동료의 모습은 솔직히 몇 번이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면서도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공동체라면 서로 도우며 함께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이기적인 모습을 계속 마주하다 보니, 나 또한 점점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내가 도울 때마다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고, 진심으로 협력할 마음도 서서히 사라져 간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가진 기준을 다시금 점검하게 되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동체는 서로 돕는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한쪽만 희생하는 구조로 유지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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