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내리는 날이 이어지면서 택배 배달이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자 몸은 점점 지쳐갔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구역으로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특히 낮은 차량으로 바꿔 지하주차장을 통해 배송하면 눈과 비를 피하며 더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동에 대한 갈망은 더욱 강해졌다.
그러던 중, 타 지역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이탈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동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스쳤지만, 그 자리는 곧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고, 기회는 사라졌다. 실장이 분명 자리가 나면 이동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던 터라 내심 이야기가 오가길 기다렸지만, 정작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그 침묵은 내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실장은 내가 이동하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것을 염려한 듯했다. 게다가 노조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나의 이동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아예 없는 일로 치부된 것처럼 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기대를 품는 것 자체가 허망한 일이라는 사실을.
이전에 내가 이동하려 했을 때, 팀의 핵심 리더들이 강하게 반대했던 일이 떠올랐다. “온 지 얼마 안 된 막내가 기존 서열을 무시하고 좋은 구역으로 이동한다면 팀 내 혼란을 불러올 겁니다.”
“그 친구가 맡은 지역을 이탈하면, 그 자리를 메울 사람이 없어 한동안 어려움을 겪게 될 겁니다.”
“그 친구가 본인의 물량 증가를 위해 인접 동료의 구역을 추가로 받아들임으로써, 이제는 아무도 소화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죠.”
이처럼 여러 비판적인 의견이 쏟아지며 내 이동 요청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팀 내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나의 갈망은 묵살되었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점점 더 깊은 회의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고강도의 추운 날씨와 더불어 어려운 배송 지역에서의 작업이 계속되자 불만이 점차 쌓여갔다. 내가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니, ‘그냥 놔둬도 문제없다’고 여기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새 자리가 생기면 이동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솔직히 밝혔다. 내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못했던 점을 인정하며, 앞으로는 이동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만약 내 의사가 수용되지 않고 지금의 상황이 계속 방치된다면, 배송 일을 지속하기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또한, 내가 맡고 있는 지역이 얼마나 까다로운 코스인지, 그리고 1년 넘게 크고 작은 사고 없이 배송을 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의 실적과 신뢰를 바탕으로,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어필하며, 더 나은 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내 노력과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정당한 의지였다.
이 같은 요구를 하게 된 배경에는 내가 배송하는 구역의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고, 그로 인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 있었다. 지금 당장 옮기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구역이 나왔을 때 내가 현재 구역에 만족하며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상황을 문제없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어필한 것이었다.
택배 배송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도 있다. 또한, 너무 일을 많이 하면 몸도 고되고 집에서는 잠만 자야 하는 현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 택배 일이 싫은 건 아니지만, 날씨가 추워지고 몸이 굳어 피곤해지자 이러한 생각은 더욱 가속화된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내 지역이 어렵다고 이탈하면 분명 이후에 올 후임자 또한 이 같은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그 또한 어려움을 느끼고 이탈하거나 나처럼 이동을 희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지역 조정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배송을 해야 한다는 답변은 이동을 더욱 희망하게 만들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배송을 계속하자니 부당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 일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무조건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가치를 인정받고 상황이 바뀔 것이라 믿었지만, 세상은 그러한 논리를 가볍게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용해 먹기 바쁜 것처럼 느껴졌다. 이게 현실이고 많은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는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상황이라며 체념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나은 상황을 개선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내가 처한 부당한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느끼는 갈증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 가치를 증명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 자신뿐 아니라, 앞으로 이 일을 하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다.
체념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지금의 어려움이 결국 내가 원하는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의 선택과 노력이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