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명은 손을 들어 올려 마나를 끌어올리려 했다. 그러나 순간, 몸을 조이는 위화감이 그를 덮쳤다. 분명 마나는 그의 중심에서 요동치고 있었으나, 결정적인 순간, 힘이 응집되지 않았다. 아니, 그가 스스로 그 힘을 제어하고 있었다.
'여기서 용환멸(龍環滅)을 쓰면 건이 눈치채겠지.'
은명은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강대한 마력을 방출하는 순간, 건이 자신의 개입을 감지할 것이 뻔했다. 그는 신중해야 했다. 지금 이들을 전부 쓸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이후의 계획이 꼬일 것이 분명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의 망설임을 놓치지 않고, 이카르타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독연무(毒煙霧)!" 그녀의 날렵한 손길이 허공을 가르며 연속적인 독공격이 퍼져나갔다. 초록빛 연기가 은명의 주위를 감싸며 피부에 닿자마자 스며들려 했다. 은명은 이를 알아채고 빠르게 몸을 회전시키며 연기를 피했다. 그러나 이카르타는 연속적인 섬광 같은 움직임으로 독을 분산시키며 은명의 시야를 흐리게 했다.
은명은 방어막으로 버티지 않고 일부러 맨몸으로 그들의 일격을 받아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르토르가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 "천중참(天重斬)!" 허공을 갈라놓는 듯한 검기가 날카롭게 은명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는 간신히 팔을 올려 막았지만, 대검에서 뿜어져 나온 충격파가 전신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그를 뒤로 밀어냈다.
융이 그 순간 유선창을 공중으로 던졌다. "연쇄유성창(連鎖流星槍)!" 창이 허공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은명을 둘러싸듯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은명은 한 번 몸을 틀어 피했지만, 창이 땅을 타고 튀어나오며 다시 한 번 그를 노렸다. 그는 몸을 낮춰 피했으나, 연이어 날아드는 창들의 압박에 균형을 잃고 뒤로 밀려났다.
비오네는 손을 번쩍 들며 주문을 외쳤다. "영속마진(靈束魔陣)!" 그녀의 주문이 발동하자 공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고,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그의 팔다리를 조여왔다. 움직임이 더욱 둔화되었고, 은명은 이를 악물며 버텼다.
그 순간, 아르토르가 다시 한 번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이번엔 지면을 내리치는 강력한 일격이었다. 충격이 땅을 갈라놓으며 은명의 발목을 붙잡았고, 흙더미가 튀어오르며 시야를 가렸다.
레이트론은 손을 내저으며 외쳤다. "파천역류(破天逆流)!" 강한 충격이 퍼지며 은명의 몸을 한 차례 크게 밀어붙였다. 은명은 무게를 실어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사방에서 이어지는 공격에 대응하기 벅찼다.
이카르타가 다시 독을 퍼뜨리며 접근했다. 그녀는 은명의 뒤로 빠르게 회전하며 단검을 내리쳤지만, 은명은 마지막 순간 힘을 집중해 반격하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비오네의 마법진이 완전히 그의 움직임을 속박했다.
은명의 몸이 굳어지는 순간, 레이트론이 마무리를 위해 마지막 기공을 방출했다. "천극쇄(天極碎)!" 강한 압력이 퍼지며 은명의 몸을 강타했다. 은명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먼지와 흙이 그의 몸을 감싸며, 그는 깊은 숨을 내뱉었다. 오신들은 숨을 고르며 그를 노려보았다. 아직도 그가 완전히 쓰러졌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아르토르는 여전히 검을 높이 들고 있었고, 비오네는 마법진을 유지한 채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러나 은명은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바닥에 뻗어 있었다. 온몸이 흙과 먼지에 뒤덮였고, 그의 눈은 감긴 채, 완전히 움직임이 멈춘 듯 보였다. 마치 더 이상 싸울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레이트론이 이를 감지하고 다시 한번 경계하며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오신들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들은 은명의 힘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일부는 검을 단단히 쥐었고, 일부는 은명의 기척을 읽으려 집중했다. 승리의 기쁨은커녕, 방금 전까지 자신들을 압도했던 존재가 이렇게 쉽게 물러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비오네가 여전히 마법진을 유지한 채 은명을 주시했다. 그녀는 신중한 태도로 그의 상태를 살폈다. 방금 전까지 그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존재가 이렇게 쉽게 쓰러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너무 쉽게 쓰러졌어." 비오네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에 아르토르도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더욱 단단히 쥐었다. 그의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때, 은명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너무나도 미세한 움직임이었기에 오신들은 이를 놓칠 뻔했다. 그러나 곧, 공기가 변했다. 아주 작은 흐름이었지만, 마법진을 유지하던 비오네가 가장 먼저 이를 감지했다.
"조심해! 뭔가가…!"
그러나 그 순간, 은명의 기운이 한순간 꺼져버렸다. 아까까지 요동치던 마력의 흔적은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그가 저항할 힘을 가지지 못한 듯 보였다. 마치 전투의 의지를 잃어버린 것처럼.
"…끝난 건가?" 레이트론이 조심스레 물었다.
비오네는 여전히 마법진을 유지한 채, 손을 뻗으며 속박술 '사슬의 결계(鎖鏈結界)'를 발현했다. 그녀의 주문이 마무리되면서 더욱 강력한 속박이 은명의 몸을 단단히 묶었다.
"혹시 모르니까, 완전히 봉인할 때까지 방심하지 마." 그녀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토르는 여전히 검을 들고 있었지만,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이카르타와 융 역시 주변을 경계하며 다가오지 않았다. 모두가 은명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은명은 기절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오신들이 그를 압도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여전히 건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더 강하게 저항했다면, 건이 이 싸움에 개입했을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이렇게 끝나는 것이 맞다.
'이제 끝냈다고 생각해라…' 은명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이 상황이 자연스럽게 마무리되길 바랐다.
사슬의 결계가 더욱 강하게 조여지며, 그의 움직임을 완전히 제한했다. 마침내, 오신들은 긴장을 풀고 한 발짝 물러섰다.
"이제야 끝난 것 같군." 아르토르가 무겁게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정말로, 이것이 끝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