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갈라졌다.
번개처럼 날아든 손바닥이 부장의 뺨을 후려치며, 짧은 침묵을 깨뜨렸다. 퍽 하고 울린 소리에 숨죽였던 시선들이 일제히 움직였지만,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테라스의 얼굴은 분노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눈빛은 날카롭게 가늘어져 있었다. 사냥감을 목전에 둔 짐승처럼, 그 시선이 부장에게 꽂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무거운 위압감이 방 안을 짓누르고 있었다. 전장을 누비며 몸에 밴 살기와 노련함이 말이 아니었다.
"드래곤을 눈앞에서 놓쳤다고?"
그 물음은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부장은 벽에 몸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뺨이 뜨겁게 달아오른 것을 느끼면서도 손조차 올릴 수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기도 전에, 테라스의 팔뚝이 허공을 가르며 부장의 몸통을 세차게 밀어붙였다.
복부를 강하게 얻어맞은 부장은 무릎이 꺾이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숨이 턱 막혔다. 간신히 목구멍을 울리는 신음조차 가누지 못하고, 그는 그 자리에 엎어진 채 식은땀을 흘렸다.
테라스는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며 부장의 얼굴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눈빛은 불길처럼 이글거렸고, 입가엔 경멸이 비집고 들어앉아 있었다.
"부대장은 기절했고, 넌 그 옆에서 넋 놓고 서 있었단 말이냐?"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분노는 칼날보다도 날카롭게 살을 파고들었다. 부장은 숨이 가빠오며 목젖을 위아래로 삼켰다. 변명 같은 것은 이미 입안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따위 걸 보고라고 올렸단 말이지?"
테라스가 한껏 목소리를 낮추자, 오히려 방 안의 공기는 더욱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누군가 가슴께를 서서히 죄어오는 것만 같았다.
부장은 입술이 바짝 타 들어감을 느꼈다. 목이 말라 붙어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웠지만, 그는 용기를 내었다.
어쩌면 살기 위해서라도 말을 해야 했다.
"…보, 보고서에도 기록했듯이… 그 자는 자신을 천비문 소속이라 밝혔습니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그는 테라스의 눈빛을 비껴보려 애썼다.
"골드 드래곤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테라스의 눈동자가 찢어지듯 좁아졌다. 입술 끝이 비틀리며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는 건가?"
부장은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천비문 소속인 것은 사실입니다. 현장에서 문파의 문장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허나…"
그는 목울대를 꿀꺽 삼켰다.
"문파를 조사하면 드래곤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테라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는 입술을 앙다물며 분노를 억누르려 했지만, 끝내 무겁게 발을 내디뎌 부장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충격에 부장은 몸을 웅크리며 바닥을 더듬었다. 방 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테라스의 시선이 부장의 온몸을 훑었다. 서늘하고 무거운 그 눈빛이 방 안을 내리누르자,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천비문을 샅샅이 뒤져라. 거짓말이라면 그놈들의 뿌리까지 송두리째 뽑아버릴 것이다."
그때, 침묵을 가르며 낮고 침착한 목소리가 방 안을 메웠다.
"테라스님."
모든 시선이 소리의 주인에게로 향했다. 책사, 케르논. 말쑥한 예복에 하얀 수염을 가다듬은 그는 무거운 기류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 직접 움직이시면 육왕군이 그 틈을 노릴 것입니다."
테라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눈빛은 여전히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지만, 그의 귀는 책사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육왕군은 이미 제국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비문을 무력으로 압박한다면, 그들은 그 틈을 빌미로 전쟁을 선포할 것입니다."
케르논의 말에 방 안의 공기가 다시 한번 바싹 조여들었다. 그는 천천히 한 걸음 다가섰다. 발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그의 움직임은 노련했다. 작은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균형.
"지금 필요한 것은 무력이 아니라 정보입니다. 조사단을 보내 천비문과 드래곤의 관계를 파악해야 합니다."
테라스는 차가운 시선을 케르논에게 던졌다.
분노가 식지는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상황이 그려지고 있었다.
긴 숨을 들이쉰 뒤, 그는 낮게 명령을 내렸다.
"조사단을 보내라."
케르논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그러나 테라스의 눈빛은 사그라들지 않는 불씨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명심해라, 케르논. 조사단이 천비문과 드래곤의 연관을 밝혀내는 순간…"
그는 무겁게 말을 이었다.
"나는 더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케르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단장으로 성전을 임명하라."
그 순간 케르논의 미간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놀라움이 짧게 지나갔다.
"성전이라니… 그 악명 높은 자를 보내시겠다는 겁니까?"
테라스는 주저함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만큼 드래곤에게 깊은 원한을 품은 자도 없지."
책사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는 조사보다는 심판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테라스는 케르논의 말을 묵살하듯 단호히 잘라냈다.
"그만."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동시에, 쥐고 있던 잔이 산산조각났다. 유리 조각이 바닥을 흩어지며 칼날처럼 반사되었다.
케르논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테라스의 분노는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었다.
"…이미 결정을 내리셨군요."
케르논은 깊이 숙이며 말을 이었다.
"성전이라면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이 원칙입니다. 조사단은 필요 없겠습니다."
테라스는 산산조각난 잔을 내려다보며 낮게 웃었다.
"그래. 내가 원하는 건 결과뿐이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부대장을 바라보았다. 묵직한 발걸음이 천천히 다가오자, 부대장의 안색이 핏기 없이 질려갔다.
심장이 광란하듯 뛰었다. 도망칠 수 없는 숙명이 목덜미를 짓누르고 있었다.
"네가 가서 성전에게 오늘 상황을 보고해라."
그 한마디에 부대장은 숨이 턱 막혔다. 성전.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짓눌렸다. 드래곤이라면 이성을 잃는 사내.
그 앞에서 어설픈 보고는 목숨을 담보로 한 설득이 되어버린다.
부대장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차마 시선을 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