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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용 Apr 21. 2023

비극

비극


손목을 그었다

     

눈물로도 씻기지 않는 흔적이 몸 안에 잠식하고 있기에

    

얇아지는 피부 위로 짙은 혈들이 드러난다

     

괴기한 녀석들에게 들이닥친 재해

     

쿵쾅거림에 부피를 줄이며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안식처를 빠져나와 발버둥 치는 모습에 몰려오는 희열

     

사지가 떨리는 공포심마저 함께 떠났나 보다

     

바라고 바랐던 옥죄던 감각과의 이별

     

나의 세계를 더럽히고 썩게 만들었던 짜릿한 복수였지만

     

입가의 즐거움은 금세 지워진다

     

흔적 뒤에 벗겨진 분수처럼 흩날리는 지난날의 기억들

     

손끝을 닿으니 떨어지는 작은 방울이 섞여도 열기가 느껴진다

       

빛 한 줌도 없는 세상에서의 해방

     

애석하게도 몸속에 울려 퍼지던 떨림은 초라해진다

     

간신히 뱉어보는 불행의 취기를 지운 온건한 숨결

     

선명하던 세상에 커튼이 쳐진다

     

나는 내가 만든 감정한테 패배하였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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