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통 사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다슬기 May 16. 2023

종숙 할매

나의 영원한 벗이자 오랜 동료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던 할머니를 남기고.







 내게 가장 처음으로 오래된 사랑과 우정을 가르쳐 준 이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종숙이고 나의 할머니다. 종숙의 몸은 어린아이처럼 작았지만 1리터짜리 생수병 세 통을 등에 지고도 약수터를 오르내릴 정도로 드셌다. 그녀는 석 돈짜리 금반지를 놔두고 초등학생 때의 내가 줬던 오백 원짜리 싸구려 반지를 끼웠고, 동전 지갑 속에 지니고 다녔던 부적에 관해 물으면 “내가 나빠서 그래, 착해지려고 들고 다녀.”라고 말하는 노인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할매~ 할매~” 하면서 부르길 좋아했다. 주변 어른들의 버릇없다는 말에도 “그 정도로 할머니랑 친근해요.”라고 말하는 나였다. 실제로 종숙과 나는 많이 친해서 서로 가장 좋아하는 사이가 되기도 가장 싫어하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런 종숙과 나는 둘도 없는 벗이자 약수터를 함께 오르는 동료였다.     



 “왜일까 사람은 사람을 상처 입히고.”

 “소중한 것을 잃게 돼.”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던 할머니를 남기고.”

 “혼자서 집을 나왔지.”*



 어느 일본의 노랫말 가사다. 우연히 마주했던 가사를 보고 종숙이 떠올랐다. 나의 부모들은 먹고살기 바빠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고, 성인이 되고 바빠진 나 또한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때마다 현관까지 배웅했던 종숙은 말했다. “또 나 혼자 남네.” 그녀의 말에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곤, “엄마가 곧 들어온대.”라는 말뿐이었다. 그렇게 십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혼자 집에 남았던 종숙은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늦은 시간 집에 들어온 내게 늘 건넸던 그녀의 한마디는 “고단하지 않아?”였다. 그랬던 종숙에게 오늘은 무얼 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무엇을 먹었고, 무엇이 재미있었고, 혹시나 아픈 데는 없는지와 같이 사소한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던 나였다.







 태어나 보니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이도 종숙이었다. 눈을 떠보니 거실 천장이 보였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울었다. 내가 우는 것을 알고 나타난 종숙이 젖병을 물렸다.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가 몸에 들어오니 거실등의 백색 빛이 살구색 빛처럼 따뜻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이 데워져 편안해진 내가 다시 잠이 들었다. 대화가 아닌 울음으로 적절한 반응을 원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아주 어렸을 적의 기억일 것이다. 이는 세상에 태어나 간직하게 된 최초의 기억이자 종숙과 함께했던 첫 기억이다. 그렇게 나의 최초의 사람이었던 종숙은 1922년에 태어나 작년 봄에 나와 세상의 곁을 떠났다.







 골절된 고관절 때문에 걷지 못했던 종숙이 홀로 병원에 있던 날, 종숙을 보기 위해 입원실을 찾았다. 당시 심각한 코로나의 영향으로 단 한 명의 보호자 이외에는 면회가 불가능했고 혼자서 종숙을 만나야 했다. 마지막으로 단 둘이 대화를 나눠 본 것이 언제였을까. 종숙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괜히 손을 어루만졌다. 주름진 손등과 손가락을 살피다가 더는 들어설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자리 잡은 주름이 애처롭고 미웠다. 그러다 분홍색 매니큐어가 발린 종숙의 손톱이 많이 예뻐서 울고 싶어졌다.


 “할매, 손이 예쁘네.”

 종숙의 손을 카메라에 담으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꿈에 나왔어.”

 종숙은 어린아이처럼 방그레 웃다가 꿈에 나타난 할아버지에 대해 말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리다가 조급하고 무서운 마음도 함께 들어버렸다.

 “할아버지가 뭐라시는데?”

 “할아버지가? 엄마 잘 있느냐고….”

 누구의 엄마일까 궁금해서 여러 번 물었지만 종숙은 같은 말만 반복하며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녀의 웃음은 눈부셨고 어두웠으며 아름다웠다. 오래전 자신의 곁을 떠나간 남편이 그리웠던 걸까. 종숙은 무엇이 좋아서 티 없이 환한 얼굴로 웃고 있는 걸까. 그러다가 문득 가까운 미래에 종숙의 웃는 얼굴을 못 보게 될 것 같아서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할매, 내가 누구야?”

 “준태.”

 “준태가 누구야?”

 “우리 작은 손주….”


 나는 종숙의 손을 꼭 잡고 생각했다. 아끼는 이의 죽음을 예견하고 그 사람 앞에 서는 것, 그 사람의 마지막 이야기에 함께하는 것. 그것은 엄격하지만 예사로우며 그렇기 때문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무엇보다 너무 사랑해 버린 당신의 생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하는 일이었다. 내게 사랑과 우정을 계승했던 종숙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종숙의 웃음을 부지런히 담았다.







 소중했고 정들었고 사랑했던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모든 이들이 그렇듯, 나는 종숙을 생각하면 아프고 시리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따뜻하다. 종숙 없이 사는 세상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 그녀를 떠올리다가 실컷 울고 웃으며 다하지 못했던 사랑을 말한다. 생전의 종숙에게 어느 하나 제대로 묻지 못했던 내가, 그녀가 없는 지금에서야 편하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종숙의 곁에 오래 있어 주지 못했던 기억이 짙어 그리움이 사무치는 날에는 그녀가 자리한 묘지를 찾는다. 그렇게 종숙을 찾아가 한평생 전하지 못했던 속내와 안부를 묻고 종숙 없이 마주하고 흘려보내는 세월에 대해 말한다. 이제는 내 곁에 없는 종숙이 나의 안부에 아무런 답을 줄 수 없겠지만, 그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종숙이 있을 세상에 관해 묻는 것 그리고 종숙과 함께 살아온 생을 기억해 주는 것이 내가 그녀에게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일 것이다. 앞으로도 그녀는 나의 영원한 벗이자 오랜 동료로 남을 것이다. 사랑하는 할매 종숙과 나는 지금도 오랫동안 지속될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2022년 봄

박준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