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죽수의 계절

얼어 죽어도 수영하는 사람의 겨울

by 맛있는 하루

"영하 10도인데도 아이스로 줘?"

"그럼~! 난 얼죽아야!"

"체감 온도는 영하 15도라는데? 춥지 않겠어?"

"난 얼죽아~~!"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타주며 물었더니 곧 죽어도 얼죽아파란다. '얼죽아'란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란 뜻이다. 온몸이 시리고 저려 일 년 내내 전기장판을 틀고 자야 하는 나는 뜨거워 죽어도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인데 말이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수영은 어떻게 해?"

내가 추위를 많이 타는 걸 아는 친구가 물었다.


"수영은 그냥 해. 미친 듯이 쉬지 않고 몸에 열기가 오를 때까지 뺑뺑이 돌아. 나 홀로 하는 자유수영이지만, 강습 시간에 뺑뺑이 돌 듯 계속 돌아. 그러다 보면 안 추워. 수영 실력은 겨울에 늘어."


"진짜, 신기하다."


"수영장 물보다 무서운 건, 땅 위야. 집 밖, 수영장 밖. 바깥 기온이 진짜 무섭지. 기모 내복을 위아래 두 겹씩은 기본이고, 귀도리, 모자, 장갑, 손 난로. 각종 장비가 필요해. 고작 집에서 수영장까지 도보 10분의 추위를 이겨내면 수영은 거저먹기야."


"너, 진짜 수영을 좋아하는구나. 수영 얘기할 때는 눈도 반짝인다."


수영하기 어려운 '계절'은 없다. 겨울엔 수영이 진리다. 차가운 물이 몸속 열기가 올라오면서 적당히 미지근한 물이 되는 온도의 변화를 피부 표피로 느끼기. 샤워 후에 열탕에 들어가 몸속에 남아있는 수영장 기운을 내보내고 뜨끈한 기운을 진피로 들여보내기. 겨울 수영의 맛이다.


ChatGPT Image 2026년 1월 28일 오후 02_02_31.png AI 생성 이미지 사용


좋아하는 것 앞에선 사자, 싫어하는 것 앞에선 겁쟁이 고양이.


나는 추위 앞에서 겁쟁이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무려 다섯 달을 겨울로 인식하고 산다. 패딩을 입고, 내복을 껴입고, 핫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실내 온도는 최소 25도. 그 이하면 손발이 시려온다. 커피도 따뜻하게, 물도 미지근하게, 차가운 샐러드보다는 국물 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


하지만 수영장에서는 사자다. 영하의 날씨에도 수영복과 수경을 챙긴다. 집에서 나서는 그 순간부터 온몸이 얼어붙지만, 수영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달라진다. 사자가 먹잇감을 향해 달려가듯, 물에 뛰어드는 순간 추위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는 순간의 짜릿한 긴장감. 그리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올라오는 체온. 이 과정이 좋다.


옛말에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에는 방해되는 일이 많다는 뜻이다. 겨울 수영이 딱 그렇다. 수영 자체는 좋은데, 그 앞뒤가 문제다. 집을 나서는 것, 수영장까지 걷는 것, 수영 후 젖은 머리로 밖에 나가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장애물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아닐까. 처지를 바꿨을 때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남편의 얼죽아를 보며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도 똑같았다. 얼죽수. 얼어 죽어도 수영.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모두가 역설 속에서 살아간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한다.


나는 추위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수영은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선택했다. 둘둘 싸매고 수영장에 가기로. 쉽지는 않다. 어떤 날은 옷을 하도 많이 껴입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우뚱거린 적도 있다. 아침마다 기모 내복 한 겹과 얇은 내복 두 겹 사이에서 고민한다. 결국에는 항상 기모 내복 두 벌을 껴입고 천이 조금밖에 없는 수영복을 챙기며 집을 나선다.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싫어하는 것도 견딜 만해진다.




수영 후, 샤워를 하고 열탕과 건식 사우나를 번갈아 들어간다. 몸속 모든 장기가 온도를 서서히 올려준다. 헤어 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바싹 말린다. 혹여 찬 기운이 머리카락에 남아있는지 손가락을 머리 속에 넣어 여러 번 확인한다. 건물 밖으로 나서기 전, 귀도리를 하고 모자를 뒤집어쓴다. 찬기운을 직접 맞이하는 것은 눈동자뿐.


방어 태세는 똑같은데, 이상하게도 수영장에서 나오는 길은 집 밖을 나설 때보다 훨씬 덜 춥다. 몸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열기가 남아있어서일까. 아니면 수영을 마친 뒤의 뿌듯함이 추위를 잊게 해서일까. 집을 나설 때와는 다르게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집으로 걸어간다.


얼죽수, '얼어 죽어도 수영'의 계절이다. 한파가 다가와도 수영장 물은 더 좋아진다. 차가운 물이 몸을 깨우고, 움직임이 열을 만들고, 그 열이 다시 물을 데운다. 이 극적인 순환이 좋다. 겨울 수영의 역설, 추위를 싫어하는 사람이 가장 추운 계절에 가장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간다.


친구가 물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왜 수영을 해?"


답은 간단하다.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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