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기, 주식이 급격하게 인기를 얻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주식이란 쉬운 돈이라 믿기 어려웠기에 오랫동안 손닿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있어 쉬운 돈이란 정당한 돈벌이 수단의 하나였기에 일찌감치 주식시장이 커졌다고 말이다.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풍문이 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한강물의 기적과 새마을운동의 여파인지, 할머니와 엄마의 세대는 주먹구구식의 일처리를 믿었다. 엉덩이 공부법이라고 하잖은가. 공부는 오래 앉아 해야 최선이고 일은 오래, 최대한 많이 해야 돈을 번다. 쏟은 시간과 결과는 비례한다.
어릴적의 나는 그런 어른들에게서 한 페이지를 외울 때마다 종이를 찢어 먹은 변호사의 수험생활 이야기를 들었고, 교과서에는 3시간만 자며 발레를 연습한 박수진 발레리나의 이야기가 실렸다. 삼당사락(三當四落). 네 시간을 자면 떨어지고, 세 시간을 자면 붙는다. 공교육이 전달하고싶어하는 교훈은 명확했다. 조금 자고, 많이 일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하지만 내가 케임브릿지에 와서 깨달은 것은 시간과 실력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번 글, '불행해야 한다는 착각'에서 잠깐 언급했듯, 모든 실력자가 주먹구구식의 공부를 한 것은 아니다. 교수들은 바람이라도 쐬라고 말했고, 친구들은 잠깐씩 나가 피크닉이라도 즐기며 머리를 식혔다. 스포츠를 즐기려고 노력하기도, 6시 이전에 모든 일과를 끝내고 자신에게 휴식시간을 주려고 하기도, 일주일에 한 번은 모여 티타임을 가지기도 했다. 휴식은 금기된 나태함이 아닌, 예정된 일과 안의 의무였다.
휴식을 취해 체력이 회복되면 효율이 살아나고, 새로운 길을 볼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의자에 앉아 보낸 삼일과 이틀을 쉬고 한 하루는 같을지도 모른다.
마치 같은 양의 찰흙을 얇게 펴바르는 것 같다. 아주 얇게 펴발라 3일을 덮을 수도, 뭉쳐서 하루 안에 밀어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깨달은 뒤에도 나는 혹시나 찰흙이 뭉쳐져 하루 안에 담기지 않을까 불안했다. 그래서 아직도 당당하게 휴식을 취하지는 못하고, 휴식을 취할 때면 불안하다.
하지만 "go touch the grass"를 외치는 케임브릿지의 교수님들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효율을 믿는 내 친구들을 믿기로 했고, 휴식 덕분에 성공했던 경험을 믿기로 했다.
금단의 영역 혹은 도박으로 여겨지던 주식은 지금 누구나 하는 부업이 되었다. 많은 세대가 믿어왔던 정직한 근로소득은 큰 돈을 벌어주지 못했다. 시간과 실력이 꼭 정비례하지만은 않는다. 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