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해야 한다는 착각

by 블록

여느 날처럼 선배와 함께 공부하기 위해 카페에 간 날, 자리에 착석하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넌 참... 절실하지 않은 것 같아.


전날 내가 올린 인스타 스토리를 본 모양이었다. 때는 시험기간이었고, 나는 전날 피크닉에 갔다. 그는 시험기간인데도 불구하고 '놀러'나갔던 나를 비판한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선배 1은 하루에 12시간씩 공부한다.

동기 2는 낙제할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며 매일 애태우고, 스트레스 받아한다. 수면패턴도 다 망가지면서까지 공부한다.

선배3은 정말 낙제했고, 그 때문에 학부를 아예 다시 시작해야 했다.


겁이 난 것은 사실이다. 나라고 불안함을 안 느꼈을 리가 없다. 그때의 나는 정말 낙제 위기에 놓여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줄 수는 없었다.


그의 말은 꼭 '시험기간에는 불행해야 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낙제를 피하기 위해 나는 왜 불행해져야 하는 걸까?

내가 불행해지면 낙제를 면할 수 있나?




2학년이 되기 전까지, 나는 그와 같았다. 시험기간이 오면 일부러 긴장된 상태를 유지했다. 이 시기에는 불행해야 한다. 시험기간이니까, 행복하다는 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니까. 수면 부족이 되어야 하고, 공부하다 토할 것 같아야 하고, 공부에 질려가야 한다. 그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믿었다.


왜? 그게 더 효율이 좋아서?

아니다. 그러면 그냥 마음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이 나빠질수록 마음은 편해졌다.

시험공부를 부족하게 했다 자책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불안해하고, 두려움을 느낀다면 적어도 시험엔 진심인 것이고, 그럼 아마 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에서 오는 마음의 안정. 그 안정감이 편해 나는 계속해서 내게 불안을 퍼다 나르고, 불행으로 인도했다.


하지만 그래, 그건 착각이다.


사실 최대화된 불안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단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불안이라도 있으면 눈을 가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바빠, 여유가 없어.' 라고 되뇌며. '그러니까 난 잘 하고 있는 걸거야.' 라고 세뇌한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어릴적부터 많이 들은 말이었다. 한 페이지를 외울 때마다 종이를 뜯어먹은 변호사 이야기, 공부하다 코피 흘리는 학생의 일화, 하루에 세 시간씩 자며 노력하는 발레리나. 삼당사락(三當四落)이라 하지 않던가. 극한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이야말로 신체적으로 피로할지라도 마음은 편할 수 있는 안식처. 어려워야 하지만 이미 편해져버린 도피처였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니까, 맞는 말이겠지'라며 잠시 눈을 가린다.


그렇게 나는 나를 소중히 하는 방법은 잊어갔다.

아니, 처음부터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노력, 그리고 시간, 중요하다. 하지만 노력이란 극한으로 자신을 몰아부치는 것밖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Go touch the grass


케임브릿지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는 “나가서 잔디라도 만지고 와라(go touch the grass).” 일반적인 학생들이 나와 같이 본인을 극한으로 몰아부칠 줄만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교수들은 한결같이 휴식을 취하라고, 방에 틀어박혀서 공부만 하지 말고 나가서 잔디라도 만지고, 신선한 공기라도 쐬고 오라고 말했다.


교수들은 휴식을 강조했다. 그리고 내게 있어 휴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대학에 들어가서야 알게 된 생소한 개념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친구의 음악 선생님은 힘들 때는 더 연주하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오히려 힘들 때 무너진 자세에 물들지 않게 되니까, 그리고 그때 힘을 쥐어짜내서 부는 것보다 회복에 힘쓰는 게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되니까.


공부도 같았다.

케임브릿지 교수들은 힘들 때 자신을 몰아부치지 말고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을 회복하라고 일렀다. 회복 전의 쥐어짜낸 마지막 발악이 아닌, 회복되고 나서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선배가 내가 ‘절실하지 않은 것 같다’고 판단하게 만든 피크닉에 있던 아이들은 빠짐없이 시험기간이었다. 그들은 다 같은 의견이었다. 머리도 안 식히면 어떻게 공부하냐는 것이다.


선배는 진실로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었지만, 잘 하는 것을 넘어 물리에 대한 통찰과 이해, 그리고 흥미가 넘치는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꼭 시간을 많이 투자한 사람들만이 멋진 물리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은 다 다르다. 각자의 성격이 다른 것처럼 물리를 보는 관점도 달랐고 공부를 잘하는 방법도 달랐으며 ‘잘한다’의 기준도 달랐다. 나는 그와 비슷하지만 다른 형태로 물리를 ‘잘’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고, 그들이 모두 불행을 무릅쓰며 공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시험기간에 꼭 불행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밸런스의 문제는 지당하게 남아있지만(가령 굳이 시험기간에 3일동안 여행을 갈 필요는 없지만) 피크닉정도는, 친구들과 나가 아이스크림을 먹을 여유정도는 있어도 되는 것이다. 시험기간에 꼭 불행해야 할 필요도, 꼭 행복해야 할 필요도 없다. 만약 시험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어야 한다 믿는다면 그건 착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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