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나는 한국의 교육방식이 싫었다. 비효율적으로 디테일에 매달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0에서 95를 만드는 시간과
95에서 99를 만드는 시간,
99에서 100을 만들기 위한 시간은 비슷하다.
그러나 95와 99와 100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95, 99, 100 모두 유려한 실력을 나타낸다. 단지 누가 더 꼼꼼한가의 차이일 뿐. 그런데도 한국에 있을 때 나는 95에 만족했다면 한번 쓰면 됐을 시간을 세 번씩이나 써가며 100을 만들어야 했다. 나는 그냥 과목을 배우고 싶은 거지 장인이 되고싶은 게 아닌데도 말이다.
친구 L은 영국 대학에서 보기 드문 미국인이다. 반면 나는 한국인. 한국 교육을 싫어해서 유학을 갔다 해도 수능 수학이나 영어를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재미있다.
"와 정말 어렵다. 이딴 걸 고딩들이 푼다고?"
경악스러운 반응을 받아내 내가 겪은 부조리함을 더 견고히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야 과거에 내가 경험해야 했던 부조리함이 모두의 것이 되고, 웃음으로라도 승화될 것 같으니까.
속으로 그가 까무러치길 기대하며 런던으로 가는 기차역에서 나는 L에게 수능 수학 킬러 문항을 보여줬다.
'다른 외국인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서 경악해라.'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 기대가 만족되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대학교 2학년씩이나 돼서 그렇기도 했지만, L은 빠르게 문제를 풀어버리고는 '왜 못풀지?'라고 장난 반, 진담 반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제가 뭐였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미적으로만 풀어야 한다 생각했던 문제가 사실은 도형의 특징을 사용하면 빨리 풀려버리는 것처럼, 이 문제도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면 어렵지 않은 문제였던 것이다. 나는 그가 '헉'소리를 낼만한 문제를 찾으려 수능 기출을 뒤졌지만 딱히 그런 문제는 찾을 수 없었다.
왜 L은 수능 킬러문항에 kill당하지 않은 걸까?
그건 L이 잡다한 수학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대학교 2학년이 되면 수능문제가 쉬워보인다는 것 자체가 다른 풀이를 많이 알고 있기에 문제해결에 유연해진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만약 고등학생의 내가 L처럼 미적 외의 지식이 많았다면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방식으로 풀이법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목적성을 가지는 것이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문제 하나를 풀기 위해서는 정석적인 방법을 배우는 게 나았을 것이다. 빠르니까. 하지만 99에서 100을 만들기 위한 시간을 다른 곳에 쓸 수 있을 자유가 내게 주어져 있었다면 고등학생의 나는 L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같은 시간을 투자해서 다른 수학을, 다른 과목을 탐색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말이다.
잡다한 것들을 할 때면 '시간낭비 아냐? 이게 어디에 쓰일 수 있다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니, 시간낭비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제는 "시간낭비가 아니다" 라는 표현도 싫다. 왜냐면 이 표현은 결국 우리의 목적이 뚜렷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L이 가졌던 ‘많은 지식'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교육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잡다한 지식이란 이런 생각이 더 어울리는 과정이다.
‘이런 걸 왜 하지?'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이런 생각 말이다.
특정한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쩌다보니 지금까지 배운 것중 하나가 얻어걸리는 것. L만 봐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수학을 배운 건 아니잖은가.
그러니 잡다하게 하는 것은 제약을 받으면 안된다. 목적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무언가를 잘 하기 위해, 이 잡다한 것들이 모여 나중에 무언가가 될 거라 믿으며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냥 하는 것들이어야 한다.
'자존감과 자기계발' 편에서 예술가에 대해 이야기하던 유튜브를 기억하는가?
나는 자유로운, 선택에 있어 여유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아직도 그렇다. 어쩌면 이런 이미지의 사람은 '쓸모없는 일'을 통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의미인지, 뚜렷한 목적성이 없어야지만 제대로 행해질 수 있는 일들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살다보면 내 세계에서의 나는 수능 수학이라는 세계에서의 L처럼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나는 용기를 내 쓸모없는 일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