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감성 에세이가 대세다.
영국에서는 감성에세이를 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자존감'이란 단어는 흔히 쓰인다.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인구 전체를 관통하듯이.
영국 사람들은 우리처럼 빡세게 외모 관리를 하지 않았고,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모든 사람을 관통하고 있지 않았다. 자존감에 대한 대화는 나눠본 적 없었다. 애초에 난 자존감과 자신감을 영어로 나눠 설명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한국과 영국이 이 점에서 많이 다르다는 건 유학을 하면서 계속 느낀 사실이다.
한국인으로서 나는 자존감에 신경을 많이 썼다.
자존감을 높이려 노력하고,
자신을 가꾸려고 시간을 들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성찰하고.
그런데 주변에서 그런 데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드는 생각은
'수지타산이 안 맞지 않나?'
점점 자존감이라는 게 쓸모 없어 보였다.
자기를 가꾸는 데에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하고, 필요 이상의 관심을 붓는 것 같았다.
본 걸 보고, 또 보고, 99에서 100을 만들기 위해 1에서 99를 만들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붓던 한국 교육 시스템처럼, 필요 이상으로 오밀조밀하게 짜인 프로그램처럼 자존감에 대한 관심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 건 한 유튜브 영상이었다.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짧았던 그 영상에서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많이 성찰하고 자기 자신만의 오리지날리티가 있는 사람들이 예술계에 많다"고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있었다.
그저 하나의 인간이 한 이야기니 맞을지 틀릴지 모르는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듣고 내 삶을 조금 돌아보았다.
그 사람이 서술한 인간상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부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했다. 외모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장 간단한 예시로 요즘 하늘을 찌르는'Korean beauty'의 인기가 있다. 그들은 관리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예쁘고 잘 가꿔진 사람을 좋아하는 건, pretty privilege라 불리는 것은 만국 공통이었다.
내가 잊고 있던 건 내가 하던 행동들의 본질이다.
성찰이란 더 나은 사람을 만들어주는 것. 나의 장점과 능력을 더 개발하고 발전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런데 그 본질은 잊고 들여야 하는 비용만 생각한 것이다.
난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그래도 최대한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이 내가 예술적이라고 판단하면 좋겠고, 신기하면서도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봤으면 좋겠다.
그건 타인을 위해서도 있지만, 그냥 거울을 보고 내가 나한테 만족스럽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자존감'의 정의다.
게다가 뭘 하고 안하고는 내 선택이다. 얼마의 비용을 들일지도 내 선택.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또한 내 선택이다. 비용이 얼마가 들어가든 내가 만족하면 해도 되는 것이다.
이쪽의 사람들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의미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기 성찰이나 계발이 시간이든 돈이든 생각이든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기는 하지만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과하게 하면 낭비가 되긴 하겠지만 그건 비단 자기성찰뿐 아니라 어느 것에나 통용되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 자기계발이라는 것은 서양 사람들이 아직 알지 못한 무언가일 수도 있다. 아직 그들이 모를 뿐인 어떤 '좋은 것'. 자존감을 높이는 행위는 그 자신의 만족감 자체로도 흑자고 그로인한 부가적 이윤을 얻는 데에도 흑자다. 그러니 나는 계속 자존감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이야 모르지만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