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릿지 공부집착증

by 블록

나는 케임브릿지가 가끔, 아니면 꽤 자주 사람들에게 공부가 가장 중요한 거라는 견해와 분위기를 심어준다고 느낀다.


감히 말하건대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2학년이 끝난 여름, 미국 대학에 대한 유튜브를 많이 봤다. 대부분 한국에서 퍼다 나른 미국의 교양 강의였는데, 다양성이 대단했다. 말 잘하는 법이라든가, 동양의 역사를 파악하는 강의라든가, 캘리그라피 강의라든가....


사실 천체물리학자가 되는 데에는 필요 없는 강의들이다. 학자가 되는 데에 혹은 잘나가는 사회인이 되는 데에 "미국 관점으로 보는 동양 역사의 이해"따위의 랜덤한 과목이 왜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그 사실은 미국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 대학들은 교양 수업을 개설했다.


왜?


글쎄. 그건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쓸모없는 과목을 학교가 제공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 같아 보였다. '네 전공에는 관계가 없지만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려줄게'라고 말하는 것처럼.




영국의 대학에는 '교양 강의'라는 것이 없다. 대학은 전공 공부를 하기 위해 가는 곳이고 옥스포드와 케임브릿지는 제쳐두고서라도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도 역사와 유래가 깊은만큼 한철의 셀럽보다는 학자를 양성하려는 색을 진하게 띠고 있다.


케임브릿지는 더 나은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가 얼마나 괜찮은 학자의 재목인지를 신경쓸 뿐이다.


처음 대학을 갈 때 교양과목이 없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기대됐다. 오히려전공 과목의 깊이를 보장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교양에는 신경쓸 겨를이 없기에 , 전공 과목에 사활을 걸 것이기에 교양강의는 없다.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1학년, 2학년... 학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닌가? 싶기 시작했다.


그래, 학문에 진심인 것은 맞다.

하지만 더도 덜도 아니고 딱 학문만을 위해 존재한다.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미국이 어쩌네 저쩌네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미국에 대해 아는 것이 조금도 없다. 하지만 결국은 공상일 뿐인 미국에 대한 나의 감상은 트리거 역할을 했다. 자유로울 수도 있었을, 좀 더 사람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가능성을 엿보게 되니 반대로 영국이, 적어도 케임브릿지가 얼마나 보수적인지가 보였다.


물론 교양 과목 나름의 바보같은 면들이 차고 넘치게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들의 부재로 인해서도 부작용이 생긴다.


케임브릿지에는 교양 교육이 없기에 사람이 학문 안에 갇히기 쉽다. 그렇게 되면 '이걸 못하면 실패자'라는 감상이 쉽게 찾아온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분위기지만, 학교는 이런 분위기를 바꾸지는 않는다.


Depression, anxiety, mental health... 듣지 않고 한달을 보낸 적이 없는 단어들이다. 그만큼 케임브릿지 학생들의 정신건강은 좋지 않다. 하지만 나쁜 정신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보편화되어, 심각성은 갈수록 희석된다. 우리의 정신건강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케임브릿지 자퇴하기' 편에서 나는 경험이 그렇게 중요한 거냐 물었다.

'내 학비는 어디로 가는 걸까?' 편에서는 대학은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만 가는 거냐 물었고,

'자존감과 자기계발' 편에서는 자존감이 왜 필요한 것이냐 물었다.


경험, 해서 어디다 쓰는가?

지식을 얻는 게 아니라면 대학은 왜 가는가?

자존감은 높아서 어디다 쓰지?

더 나은 사람이 된다 하더라도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냔 말이다.


하지만 어디에 "쓰냐"니.

나는 직업에, 돈을 버는 것에, 혹은 내게 이윤을 가져다주는 것을 지칭하며 "쓴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잊어버린 것이다. 그런 쓸모라는 게 원래는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써 태어났다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뭘 위해 사는가?

내가 학자가 된다 하더라도, 뭘 위해 학자가 되느냔 말이다.


기숙학교에서 자신을 잘 돌볼 줄 알게 돼서 뭐가 남느냐고?

자존감이 높아서 뭐에 쓰이냐고?


이들은 애매하고 모호한 질문이 아니다. 이 질문들에는 한 가지 확실한 답이 있다.

"졸업하고 인생을 잘 살겠지!"

그리고 이 한 줄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사실이다.


어이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학자가 되려고 여기에 모인 게 아니다. 학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들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 그러나 얼마나 학문만을 중요시했으면 이런 당연한 사실을 잠깐이라도 망각한 것인가?


떠돌아다니는 미국 대학의 강의들에, 자존감을 키우는 데에,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에 "쓸모"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런 일들을 해야 하는 이유다. 결국 잘 살고 싶으니까, 결국 나에게 더 좋은 삶을 선물하고 싶으니까. 우리의 삶은 공부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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