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학비는 어디로 가는 걸까?

by 블록
나도 잘 모르겠는데?


과학 시간 질문에 선생님은 농담조로 이렇게 대답하셨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장난으로 하는 말 치고는 무책임하다. 게다가 제대로 된 답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장난'이라 부르긴 애매하다. 선생님에게서는 제대로 된 질문의 답을 받을 수 없었다.


영재학교를 준비했는데 합격하지는 못했다. 과학고는 가기 싫었고, 그렇게 간 일반 고등학교의 수준이란 "나도 잘 모르겠는데?"의 연속이었다. 나는 학교에 교육을 받으려고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교가 나를 교육해주지 않는다니. 내 수준은 몇 년째 같은 곳에 머물러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학교를 버리고 '책'으로 눈을 돌렸다. 이때 '책'이란 전공책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출판책이다. 당연하게도 이 출판책들은 오개념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건 고증보다는 흥미 유발이 중요한 '대중' 과학책이니까.


하지만 '고증'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논문도 하나 읽어본 적 없는 내가 알았을 리가 있나. 내 주변에는 과학에 관심이 있는 선배도, 동급생도, 후배도, 학계와 연관되어있던 어른도 없었다. 그러니 나는 오개념을 배제하는 방법도, 오개념이 섞이지 않은 자료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한 번 좌절했다. 책조차 고등학생 수준의 내가 봐도 알만큼 부정확하다면, 내가 볼 수 있는 자료 중 가장 정확해야 하리라 믿은 문서조차 부정확하다면 나는 뭘 믿어야 하는 걸까?


'최고의 대학에 가서 진짜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


그래서 케임브릿지를 지망했다. 배움이란 그게 선생이든, 책이든, 교수든 누군가가 나에게로 전달해줘야 하는 거니까. 이번에 믿어볼 것은 선생도 아니고, 교과서도 아니고, 대중 과학책도 아닌 교수인 것일 뿐 무언가에 기대는 것은 동일했다.




찾아본 '자료'의 마지노선이 출판책이었던 건 내가 글 읽기를 힘들어해서일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을 받는 나는 '스스로 자신을 교육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목별로 학원이 준비되어 있고, 유형별로 문제집이 만들어져있다. 심지어는 파이썬이나 웹디자인, CAD같은 공통 교육에 없는 세분화된 분야도 '인강'이라는 공통된 카테고리에 묶여 중비되어 있다. 그러니 나는 무언가를 배우려면 '학원'에 가거나, '학교'에 가거나, '인강'을 들어야 한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내 야심찬 마지막 계획에서 얻은 답이다. 그 계획이 딱히 필요가 없었다는 것. 교육의 기회는 학교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


잘 찾아보기만 한다면 무엇을 배우기 위해 어떤 기관에 갈 필요는 없었다.




2학년때 배운 전자기학을 예로 들어보자. 그때야말로 내가 'textbook'이란 것을 처음 사용해본 시간이었다. 한국어로 말하면 '전공책'이겠다. 전자기학에는 '그리피스'라는 이름의, 바이블처럼 읽히는 전공책이 있었다. 강의에서 교수가 전달하는 내용, 예시 문제, 친절한 설명까지 모든 것이 나와 있었다. 내가 할만한 질문들까지 모두. 그리고 대부분의 질문들은 사실 더 알기만 하면 해결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교수든 학교든 없어도 전공지식이란 이 책 하나면 이 과목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은 어느 도서관에 가든 서점에 가든 꽂혀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교육'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지식을 얻기 위한 필수 과정이 아닌, 지식을 편하게 수용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나를 교육하려면 그 매끄러운 길이 아닌 전공책같은 울퉁불퉁한 도로를 걸을 깡만 있으면 됐다. 그게 전부였다.


그러니 내가 이 값비싼 학비를 어디에 제공하고있는지 헷갈린 것은 당연하다. 나는 학비를 전공책에 적힌 지식의 전달값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케임브릿지는 지식을 잘 떠먹여주는 학교가 아니다. 케임브릿지는 강제적인 자기주도학습을 강요하는 학교다.


물리학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Latex라는 문서 편집기와 파이썬같은 기본적인 코딩 언어정도는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3학년쯤 되면 이쯤은 할 수 있을 거라고 학교는 우리에게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는 파이썬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나? 아니.


1학년 때의 과목은 4개로, 컴퓨팅은 포함되어있지 않다. 2학년도 마찬가지, 3학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컴퓨팅 과제는 나온다. 그러니까, 알아서 공부해서 과제를 제출하라는 말이다.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고, 공부는 해와야 한다.


내 학비가 정말로 향하고 있는 곳은 '지식 전달'같이 모두가 알고 있는 데에 있지 않다. 학교의 이름값이나 인맥, 학교에 마련된 실험기구 등도 마찬가지다. 그런 모두가 아는 사실들은 정말로 내 학비가 향하느 곳이 아니다. '학비가 정말로 향하는 곳'은 남들은 모르는 곳에 있다. 그건 딥하게 들어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을 알게 되는 값이다.


예를 들어 이런 학교를 둘러볼 수 있는 경험, 우리가 가장 효율적으로 지식을 전달받을 수 있게 하는 몇백년동안 쌓인 데이터, 수준 높은 교수들로 인해 0에 수렴하는 오개념, 나는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으니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는 심리적 안정감 등등.

거기에 덧붙여 케임브릿지에 감으로써 내가 떠먹여주는 교육만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즉, 알을 깨고 나오는 값이다.


내가 케임브릿지의 학비에 대해 고민하면서 배운 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값이 붙지는 않는단 사실이다.


나는 아직도 이런 경험값에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 비교 대상이 없고 수요는 있는 것들에 얼마의 값이 붙어 마땅한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최대한 비싸지만 윤리적으로 욕을 먹고 대중에게 정이 다 털려 인정받지 못하는 기관이 되기 직전의 값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값이 붙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 학비는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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