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잃기 전에 생각해봐야 하는 게 있다.
진짜 내가 부족한 건가? 아니면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자신의 좋은 점을 극대화하지 못할 뿐인가?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대학에 와서의 나는 능력 없는 사람이었다. 나만은 내 장점을 알았지만 그 장점이 바깥으로 나갈 기회는 없었다.
특히 1학년 시절, 나는 대학의 커리큘럼을 얕봤고 선택과목 4과목에 생리학을 넣는 실수를 했다.
1학년때는 7개과목중 4개를 택할 수 있다. 모두 전공과목이며, 한국처럼 교양강의라는 개념은 없다. 나는 생물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었고, 영어로는 더더욱 건드려본 적 없는 분야였다. 내 a-level(영국의 고등학교 과정. 3-4개의 과목을 고른다) 과목은 수학, 심화수학, 물리, 화학 이렇게 네 개였다. 말했듯 생물과는 인연이 없다.
그럼에도 익숙치 않은 걸 넘어 무지한 생리학을 고른 이유는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려운 도전과제를 스스로에게 던지면 어쩔 수 없이 더 열심히 하고 또 학년이 끝났을 때는 더 많은 걸 알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케임브릿지의 수준을 얕잡아본 내 실수였고, 결과적으로 1학년때의 나는 학문적 성과랄 것을 하나도 거두지 못했다.
이 시기 주변 사람들이 보는 나는 공부도 잘 못하고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사람 아니었을까 싶었다. 한 번도 능력이 내비쳐진 적이 없었고, 기회도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내 가능성이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쉬웠다. 기회가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별 볼 일 없는 거였나 싶은 생각이 자꾸 올라왔다.
마찬가지로 '별 볼 일 없는 대학생1'의 생활을 하던 2학년의 어느 날이었다. 여느 케임브릿지 학부생들처럼 우리는 친구들끼리 모여 포멀디너에 갔고, 포멀 디너에 가면 으레 그렇듯이 뒷풀이로 컬리지의 바(bar)에 가 맥주와 사이다(영국에서 흔한 탄산 과일주)를 시켜놓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친구PD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일러두자면 나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데, 아실지 모르겠지만 취미로 그리는 그림에도 철학이 있다. 나의 경우 현실에 없는 걸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아래의 그림을 보라. 분홍색 머리칼에 푸른색 명암이 있을 수는 없고, 탕후루의 질감이 인간에게서 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림이 되었을 때 사람은 그 미묘한 차이를 '불가능'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명암'과 '사람'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림의 그런 특성이 좋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그림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디테일이나 스타일이 바뀔 수 있다.
아래는 그림의 전체적인 느낌(뻣뻣하고 유동적이고)에 신경써 보았다.
이 모든 것을 PD에게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자 말을 할수록 내 그림에 담은 생각이 많다는 걸, 내가 느끼는 게 많다는 걸, 나에게 소중한 게 많다는 걸 깨닫게 됐다.
상담은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게 아닌 그들의 말을 꺼낼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자신이 자신을 돌아보고 알아갈 수 있도록, 상담사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그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에 가깝다고 말이다. 나는 내가 나를 모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이날 내 그림을 설명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PD가 이 말에 관심이 없었다면 내 안에 있는 무언가는 전달될 수 있었을까?
내 능력이 없거나 멋지지 않은 게 아니라, 나는 그저 맞는 환경에 있지 않았을 뿐인지도 몰랐다.
케임브릿지에 오기 전 나는 공부를 많이 하는 건 무조건 범생이같고 쿨하지 않은 것, 인스타그램의 얼굴과 몸매가 아니면 예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케임브릿지에서 학업 능력이란 신분을 결정짓는 요소였고, 여러 나라를 돌아보니 말이 되는 미의 기준이 하나만 있지 않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작품이 유명해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좋은 작품, 그리고 작품의 가치를 볼 수 있는 눈.
그러니 어쩌면 우리가 가치없다 생각하게 될 때, 물론 정말 능력이 없는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맞는 환경에 있지 않기 때문에 빛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