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PB가 물었다.
"What would you do if the time stops, and you are the only one who’s free to move?"
"시간이 멈추고, 너 혼자만 움직일 수 있다면 뭘 할래?"
시간이 멈추는 기간은 찰나부터 무한대까지, 취향껏 고를 수 있다고 했다.
티내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녀의 질문이 전달되는 순간, 그리고 나의 대답이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내 세계에 갇힐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전달하는 말은 내가 갇힌 나만의 세계만을 오롯이 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녀가 답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PB의 대답을 들을 때쯤에는 PB도 그녀만의 세계에 갇히게 될 것이다.
"너 내일 뭐 할 거야?"라는 질문은 내일 할 생각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고, 만날 사람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고, 어디에 갈 건지를 묻는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이들이 뭘 물은 건지는 거의 명확하게 결정된다. 그만큼 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가령 쇼핑을 하고 있을 때 "너 내일 뭐 할 거야?"라고 묻는다면 내 일정이 비었거나 비지 않았음을 보고 뭔가를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에 맞게 내일의 시간을 채우고 있는 '스케줄'에 대해 설명하게 된다.
무료하게 TV를 보고 있을 때 "너 내일 뭐 할 거야?"라고 물으면 내일 네가 하고싶은 활동은 있느냐를 묻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스케줄처럼 몇시부터 몇시가 채워진 일정이 아니라도 어떤 활동을 할 생각이었는지를 말한다. '내일은 고양이카페나 갈까?'처럼 말이다.
이렇게 흔히 묻는 질문에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멈춘다면"같은 질문은 다르다.
이런 질문에는 가이드라인같은 게 없다.
시간이 멈춤에 초점을 맞출지, '혼자'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출지,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를 진지하게 생각해볼지 '뭔 헛소리야'라며 생각해보기 싫을지 그 첫걸음부터가 대답하는 사람의 몫이니까.
게다가 답하는 사람은 아웃소스를 사용할 수 없다. 질문에 답하게 되는 순간 그는 자신만의 공간에 갇힌다.
어떤 구조를 택하는지, 어떤 내용을 택하는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바깥이 아닌 그들 안에 있던 정보가 되고, 그들의 목소리 떨림 하나까지도 모두 그 사람을 대변하게 된다. 누군가를 알아가기에 이보다 더 좋은 질문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나는 대답 대신 물었다.
나를 가두지 않고 그녀를 가두기 위해.
그래서 그녀를 더 알아가기 위해 말이다.
"글쎄. 넌?"
고민하는 PB의 얼굴은 진지했다.
PB는 일단 피아노를 엄청 연습할 거라고 했다. 그런 다음엔 다른 악기들을 차례차례 정복하고, 시간은 무한히 주어졌으니 다시 흐르게 하기 전 약 이름을 다 외워 장기 기억으로 만들어놓을 생각이라고 했다. 의학과 학생다운 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로써 PB는 판타지스러운 상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며, 악기가 그녀의 머릿속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차례차례 정돈된 계획을 말한다는 점에서 PB는 중구난방으로 일을 펼치기보다는 언제나 차근차근 단계를 밟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왜?"
내가 물었다.
PB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뭔가를 잘하는 사람은 쿨하잖아."
간단하지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답이었다.
1. PB는 뭔가를 잘하는 사람은 쿨하다고 믿는다.
2. PB는 쿨해지고 싶다.
"왜 쿨해지고 싶은데?"
내가 물었다. PB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I don't know man, that is deep"라고 말했다. 대화가 너무 진지해졌다는 소리다. 이쯤에서 대화가 마무리됐다.
나는 이 간단한 질문으로 PB가 쿨함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또, 클래식 음악이 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고, 능력으로 인한 명예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머릿속에 '능력'이란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한편으론 그럼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무엇을 할 건지, 이런 게 가능한 경우에 사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해졌다. PB의 말대로 이 모든 실용적인 능력을 쌓는다면, 돌아온 우리가 하고싶은 건 무엇이며 우리는 왜 그런 짓을 해야 하느냔 말이다.
시간이 무한히 주어지는 것은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 때나 의미가 있다. 그렇담 능력을 다 쌓았음에도 돌아오는 이유는 뭘까. 이는 우리가 남과 비교하고 우위에 서고 싶어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걸까? 우리는 우리 고유의 대단한 능력보다 그 능력이 남보다 나은 걸 원하는 걸까?
만약 PB가 내게 같은 질문을 되물었다면 나는 위와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다. PB는 이유보다는 계획을 하는 사람인 것처럼 나는 계획보다는 이유에 사로잡히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근본부터 다른 대답을 했을 것이다.
PB가 제시한 답에서 얼만큼 클래식 음악으로 쿨해지기를 바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궁금했다. 쿨함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한 사람일지, PB가 생각하는 쿨함에 클래식 음악은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하지만 피아노를 전문가급으로 치지 않아도 PB는 쿨한 사람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녀의 세계가 궁금해질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