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릿지에서 수학과와 물리학과를 가르는 경계는 좀 독특하다.
내가 공부하는 "물리"라는 과목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나뉜다. 실험물리, 그리고 이론물리.
두 가지 모두 물리로 취급해 물리학과에서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케임브릿지는 다르다. 정석적인 이론물리 과목들은 모두 수학과에 속한다.
2학년 시절 함께 공부하던 골수 물리학도들은 이런 시스템을 입학한 뒤에야 깨닫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론물리에 대한 열망이 컸던 사람일수록 그랬다.
오늘 할 이야기는 물리에 대한 건 아니고, '평벙함'에 관한 이야기다.
친구 J또한 이런 헷갈리는 시스템의 피해자라 볼 수 있겠다.
나는 이론물리가 수학과에 속한다는걸 J를 통해 2학년 때 처음 알았는데, 애초에 나는 물리는 다 똑같아서 가르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줄 몰랐다. 하지만 같은 과목을 가르쳐도 수학과의 이론물리 과목들은 원리나 수학적 배경에 집중했고 물리학과는 현상에 대한 해석 도구 느낌으로 가르쳤다.
나에게는 현상보다는 '왜' 세상에 이렇게 생겨먹었는가가 중요했기 때문에 같은 과목을 두고도 그 과목을 다루는 결이 다르다는 사실이, 그리고 쪽은 원한 것의 반대라는 게 허탈하기도 했다. 내가 그랬으니 이론물리에 나보다도 진심이었던 J와 같은 사람들은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허망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학교는 이딴 헷갈리는 기준으로 학과를 나눴으며, 나랑 나는 뭐 하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의 탈을 쓴 불평을 나눴다. 그러다 J가 그가 처음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이없음에 어머니께 전화했을 때의 이야기를 흘렸다.
불평을 털어놓았을 때 J의 어머니는 덤덤한 태도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잘 안 찾아본 네가 잘못이지."
사실 수학과 이야기도 충격적이긴 했지만, 나에게는 J 어머니의 말씀이 더 충격적이었다.
내가 수학과에 대해 알지 못했던 이유는 내 서치능력이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어릴 적부터 나는 글 읽는 게 어려워서 보통 간판을 읽지 않고, 설명글을 생략하기 일쑤였다. 대학교1학년 때는 그 증상이 심해져 몇 달동안 이메일을 읽지 못했고, 그 결과로 중요한 미팅이나 데드라인을 여러 개 놓치기도 했다. 그러니 대학에 대한 끝없는 스크롤의 글들을 읽는 것이 고역이었음은 자명하다.
그런 나였으니 대학을 준비할 때 나는 내가 아주 대견해서 자랑스러울 정도였는데, 읽기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고 꾸역꾸역 대입 자료와 지원자격 등을 스스로 찾아봤기 때문이다.
전에 말한 적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공립학교에 갔기 때문에 케임브릿지에 대해 아는 선생님이나 입시를 총괄해주는 전담 선생님이 없었고, 유학원의 정보는 양도 적고 정확도가 너무 낮았다. 그러니 모든 정보를 나 혼자 찾아야 했고, 나는 글을 잘 못 읽는 나에게 특별히 어려운 그 과제를 해결했음에 더없이 뿌듯했던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뿌듯했던 리서치란 고작 컬리지에 대해 알게 된거라거나 내 학과(natural sciences과)가 뭐 하는 과인가 정도였다. 이 정도만으로도 나는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해서, 사실 수학과와 물리학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래 우리 학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는데 알았어도 학과별로 전부 뒤져볼 기력도 없었겠다'싶었다.
그런 나였으니 너무 캐주얼하게 "왜 안 했니?" 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혼란스러웠다.
마치 이게 정상인 것처럼, 누구나 이정도는 기본으로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헷갈렸다.
이게 보통인가?
다행인 건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는 이게 보통은 아닌 게 확실했다는 점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 친구들은 무언가를 스스로 하기 싫어했고, 다들 학원을 다니고 수능을 준비하면서도 최대한 공부라는 것을 멀리하려고 했다. 특별한 과목이나 서술어로 정의되지도 않은 '공부'라는 모호한 단어를 입 밖으로 내면 바로 재미없다는 눈초리를 받았다.
학교마다의 정도 차이가 있고 시간이 흐르면 문화는 바뀌니 나와 공감하지 않으실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집단이 존재한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내가 겪었으니까.
그러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가 대학을 잘 찾아본 것은, 본인이 하고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보통'이라 정의하기엔 좀 특별하다.
내가 살아온 환경의 '보통'이란 그보다는 수준이 낮았다. 그러니 언젠가부터 나는 학생이란 무언가를 하기 싫어해야 하고 주도적이면 안 되는 존재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러니 주도적인 생각이 들거나 힘든 일에 도전하고 싶어질 때는 나도 모르게 자제하게 되었다.
케임브릿지에서 마주한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이런 기본적인 성향과 성격의 기준점이 다르다는 거였다. 못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들을 그렇게 교육을 받았든 본인이 그런 성향이었든 당연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평범함'의 수준이 내가 겪어오던 것보다 높았다.
만약 내 친구가 케임브릿지에 지원하면서 지원 요건이나 학과의 정보를 전부 찾아봤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걸 다 찾아봤어? 짱이다."
내가 대학에 지원하며 찾은 것들을 엄마에게 말해줬다면 우리 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걸 혼자 다 찾았다고? 대단하다."
혹은 다른 엄마라면 모임 같은 데에 가서 이렇게 말했을 것도 같다.
"우리 애는 대학 컨설팅 안 받았어. 혼자 다 찾아봤더라고."라고.
그러니까, 자랑해 마땅한 일이 맞다. 대학 컨설팅과 심지어는 비자까지 지원 대행이 있는 마당에 만17살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찾아보는 건 '모두 다 그래'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흔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J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잘 안 찾아본 네가 잘못이지."
J와의 대화에서, 그리고 케임브릿지의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기준이란 이렇게 쉽게 바뀌어버린다는 것.
이들의 기준은 내가 학습한 것보다 높다는 것.
이것은 케임브릿지에 왔기에 알게 된 사실일 수도 있지만 대학에 왔기에 알게 된 사실일 수도 있고, 어른이 되는 과정일 수도 있고, 유학을 왔기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일 수도 있다. 다양한 사람이 모였기에 내가 본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있던 그 어떤 집단보다 이곳 사람들이 질문하지 않는 '평균'이, 그들의 '최소한'이 가장 높았던 것은 맞는 것 같다.
케임브릿지에 간 이후 나는 내가 다른 학교에 갔다면, 다른 지역에서 살았다면, 다른 배경,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종종 생각한다.
전에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이란 입는 것, 누리는 혜택, 먹는 것 따위의 것들이 달랐을 거라는 일차원적인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아마 다른 환경에서 살았다면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것이 바뀐, 그 어떤 것이든 그에 대한 '기준'이 바뀐 삶을 살았을 것이다.
'보통'이라는 게 달라져버렸을 테니까. 그리고 난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겠지.
마찬가지로 내가 목격하기 전까지는 절대 정확히 상상해낼 수 없을 그 다른 '기준'이라는 것이 궁금하다. 운이 좋다면 졸업할 때쯤이면 몇 가지를 더 알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