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놀이
(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나쁜 일이 일어나거나 시간을 낭비한 것 같을 때, 혹은 그저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모든 건 경험이야’,‘경험을 했지’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무엇이든 경험이다. 무슨 일이든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는다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릇에 묻은 음식물 찌꺼기를 긁어모으며 '이것도 음식이야'라고 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박박 긁으면 어떤 다 먹은 접시에서도 음식을 긁어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긁어모은 찌꺼기가 정의상 '음식'인 게 뭐 그리 중요한가?
이과생스럽다 할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배울 점의 존재가 아니라 그 효율이다. 같은 시간 안에 A를 했으면 1을 배웠겠지만, B를 했다면 200을 배웠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선물하기 위해 노력하고, 더 나은 환경에 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한 짓이 x0.1, 심지어는 x0.001에 맞먹는 일이었다면 설령 그것이 경험이었다 하더라도 안타까워해 마땅하다.
케임브릿지는 어떤가?
Christmas Super Hall의 전날 나는 학기도 끝난 김에 'Theory of Everything(2014)'을 시청했다. 케임브릿지에 갈 줄 몰랐던 고등학생 시절 보다가 졸았던 영화였는데 촬영지가 우리 컬리지(St. John's College)라길래 재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영화의 앞부분이 계속 뇌리에 남았다. 학부 시절 스티븐 호킹과 그의 동기들이 모여 블랙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진한 여운을 남긴 이유는 잘 알고 있었다. 과학에 대해 누군가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 내가 동경하던 일이었고 이런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그리고 그 일상적임이 부러웠다.
아마도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서 배울 점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자퇴를 고민할 때도 이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만 알 수 있으므로, 모르는 것들은 그 정의에 따라 절대 예상할 수 없으므로 어떤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내가 재야하는 건 내가 볼 수 없는 미래의 좋은 경험이 그 무지함 속에 숨어있다고 믿을지, 숨어있지 않다고 믿을지 선택하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이 내가 예상치 못한 엄청 큰 발전을 가져다 줄까? 아니면 그저 그런 해들을 보내고 그리 특별한 것은 얻지 않은 채 일반적인 경험만을 얻어서 졸업하게 될까? 케임브릿지에서 공부한다는 건 만만하지 않다. 그 고난을 뚫어낸다면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성장은 수지에 맞는 성장일까?
자퇴를 생각할 때 그 질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모르는 미래에 오지 않을 것 같은 Theory of Everything의 그 장면이 펼쳐질 날이 있을까. 그 장면이 아니더라도 내가 모르는 다른 멋진 씬들이 언젠가는 오게될까.
자퇴하지 말자 다짐한 크리스마스 포멀 디너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그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뇌리에 끝까지 남아 진한 여운을 남기던 Theory of Everything의 그 장면이 말이다.
나는 2학년이었지만 4학년 석사 과정 친구들이 많았다(영국은 학부 3년, 석사 1년이다). N과 FK, PD가 포멀디너의 메뉴판 뒷면에 힐베르트 공간을 그리고 자기들만의 시답잖은 이론에 대한 시시껄렁한 토론을 하기 위해 공간과 좌표를 정의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전 글에어 나는 경험을 쫓는 것은 상상력의 부족이 아니냐고 빈정댔다.
부족하다. 상상력.
케임브릿지에 온 게 아니었다면 공부로 직급이 갈리는 사회가 있는 줄 알았을까? 이런 기발한 대화가 캐주얼하게 가능한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었을까? FK가 힐베르트 공간을 사용해 눈을 돌렸다 돌아봤을 때 N이 춤을 추고있을 가능성을 예측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내가 모르는 내 미래가 알 수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채워져있을지, 그저 그런 암흑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경험의 효율을 따져야 한다. 케임브릿지는 내 미래가 특별한 경험으로 채워져있게 만들 가능성을 충분히 높여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겠지.'
그날에서야 나는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판단의 이유는 '케임브릿지가 일반적인 장소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직 이 학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다 파악하지도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소이기에, 그리고 그걸 안다고 치고 판단했을 때도 평범한 경험을 제공하는 곳은 아니란 것을 알고 있기에 아마도 캠브릿지가 가져다줄 내가 모르는 경험은 내 기대치보다 높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 그러니 나는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믿기로 했다. 케임릿지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리라.
그렇게 나는 자퇴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