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릿지 자퇴하기(1)

"그딴 거 질문할 시간에"

by 블록

지금까지 문화가 어쩌고 경험이 어쩌고 하면서 학교 자랑을 실컷 해댔지만 사실 그런 멋진 공간을 두고 자퇴하려고 했었다. 두 번정도.


1학년 3학기, 그리고 2학년 1학기가 그 시기였다.


1학년 때는 우울증이 심했어서 사실 자퇴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깊었는지는 상대적으로 불분명하다. 하지만 2학년은 많이 진지했다. 그때는 자퇴에 대한 생각이 너무 깊어져서 시간이 지나고 이 시간이 과거가 되었을 때 '그런 일도 있었더랬지'라며 턱없는 고민이었다 말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먼저 내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대학의 이름값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영국의 2년 고등학교 과정인 a-level을 시작했다. 에이레벨을 시작한 이유는 케임브릿지 등의 대학이 아니었다.


내가 a-level을 시작한 이유는 이랬다.

1. 과목을 3개 혹은 4개만 고름

2. 시험이 서술형임


별거 아닌 두 줄의 이유지만 이 두 개가 시사하는 영국의 속마음은 깊다. 서술형, 그리고 소수 과목에 대한 집중은 그들이 전문성, 그리고 이 개인의 과목에 대한 이해도를 중요하게 본다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나와 이해 관계가 맞을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었다.

적어도 한국보다는 높지 않을까?


중학생 때의 나는 한국과학영재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영재학교를 가고싶진 않았고 한국과학영재학교를 가고 싶었다.

특별히 이 학교인 이유는 당시의 1차 입학시험 기출문제들을 봤을 때 그들이 내는 문제야말로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이란 것이,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이해하고 지름길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았다. 그것만의 쾌감을 잊을 수 없다. 그러니 객관식보단 서술형이, 시험보다는 궁금증이 중요했던 것은 당연했으리라.


영국 유학을 선택했을 때, 위와 같은 이유로 a-level을 시작하기를 선언했을 때 엄마가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을 노리고 가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학교에서나 하는 고등교육과정이 마음에 들어서 간다고? 갔다가 네가 생각했던 게 아니면 어떡해?"


그래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엄마에게까지 믿음을 줄만큼의 확신은 없었지만, 나에게 믿음을 줄만큼은 있었다.


앞서 대학의 이름값을 믿지 않았다고 했는데, 고등학생 때의 나는 대학같은 거 가지 않아도, 학위같은 이름만 적힌 종이쪼가리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학위를 위해, 이름값을 위해 대학에 가는 사람들을 온 힘을 다해 싫어한 건 아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명문대라 불리는 케임브릿지에 지원한 이유는 내가 공부하는 과목에 흥미가 넘쳤으며 마땅한 수준의 교육을 못 받는 상황에 화도 넘쳤기 때문이다.


나는 특별한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다.


한국과학영재고에 가지 못한 나는 다른 특목고에 지원해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과학을 배우고 싶은 것보다는 창의적으로 가르치는 과학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고, 기출문제라는 얄팍한 지식으로 판단하기에 그런 기관은 한국과학 영재학교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대로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자퇴하고 간 영국의 학교도 평범한 공립학교라서 일반고와 다를 바 없었다.


공립학교 선생님들은 과학에 관심이 없거나 지식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무언가 질문을 했을 때 "나도 모르겠는데?"라는 답을 받는 경우는 허다했고 , 후에 찾아보니 선생님이 오개념을 전달했던 적도 많았다.


그러니 대학의 이름을 믿지 않은 것은, 그게 중요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대학의 이름이 주는 편의나 잔잔한 권위보다 배움의 물결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명문 대학교란 좋은 교수들에게 질문하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 내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그런 교육을 제공해줄 선망의 장소였다.




대학의 이름값을 믿지 않는 사람이기에 자퇴라는 생각에 매이는 건 더 쉬운 일이었다. 대학이란 배움의 기회라고 믿었기에 원하는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대학은 소용없는 것이라 믿었다.


창의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사랑할 줄 알았던 케임브릿지는 내 상상만큼 그런 질문에 관대하지는 않아 보였다. 1학년 때 한 소그룹의 세미나. 화학에서 오비탈을 배우던 시기의 일이다. 나는 세미나에 갈 생각에 신이 나 있었다. 수업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케임브릿지라는 최고 반열의 대학에서 교수에게 질문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내 인생 최초로 오개념이 아닐 답을 보장받은 질문을 할 기회가 왔다는 소리였다. 고등학교 내내 그렇게 바라던 날이었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질문할 것이 많았다. 고맙게도 내게 첫 질문을 할 기회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일이 좀 꼬이는 것 같기는 했다. 짝꿍에게 ‘너 이번주 어땠어? 잘 이해했어?’라는 물음에 ‘괜찮던데.’라는 깔쌈한 답이 돌아왔다.


괜찮다고...?


강의에서는 오비탈이 정확히 뭔지, 파동함수가 뭐고 왜 사용하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래프와 그 특성, 그리고 계산법에 대해서만 말해주었을 뿐이다.

그들이 말한 wavefunction이란 위치이자 존재 확률, 에너지였다. 어떻게 하나가 동시에 셋이 되는가? 설명 없는 강의를 들으며 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고?


'대체 어떻게 이해한 거야'


책이든 논문이든 다른 자료를 찾아본 건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자료를 찾아 이해한 거였다면 ‘헷갈리긴 했는데 해결했어’같은 답이 나왔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상태로 세미나가 시작됐고 나는 예정대로 오비탈, 그리고 wavefunction이 뭐나고 질문했다. 그게 대체 뭐길래 위치이자 존재 확률, 에너지가 될 수 있는지 말이다.


교수의 표정이 언짢아졌다. 그런 데에 시간을 할애하기 아깝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는 귀한 시간을 할애해 질문에 답한 뒤 나에게 강의 노트에 나온 s와 p오비탈의 그래프를 그려보라 말했다. 오비탈이 뭔지 이해하지 못했으니 그래프도 알 턱이 없었다.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나는 '이딴 거 질문할 시간에 그래프나 외워라'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는 설명을 계속했다. 오비탈 이후의 것들은 머릿속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모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기습 질문을 했고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했다.

"방금 전에 이것보다 더 당연한 건 없다는듯이 끄덕였잖아. 근데 지금 와서는 모른다고?"

영어로 말이다.


내가 유학을 갈 때 우리 엄마는 내가 영어가 안돼서 유학을 자가 포기할 거라고 믿었다. 그만큼 내 영어실력은 구렸다. 당연히 반박할 언어 따위는 없었고, 설명할 능력도 없었다. 반박은커녕 그가 한 말이 빈정거림이었딴 사실도 두어 번 곱씹어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이 세미나로 인해 케임브릿지에 기대한 내 유일한 환상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과학 학원이든, 책이든, 인테넷 교수의 조언이든, 과학을 하려면 끊임없이 질문하라고 말했다.


질문을 해라.

궁금증만큼 중요한 건 없다.

질문하는 습관을 들여라.


학부생의 신분으로 가장 좋은 과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 중 하나에 갔다. 그럼에도 '이런 거 고민할 시간에 그래프나 외워라'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조언이었어야 할 말이 "이런 거 고민할 시간에 그래프나 외워라"라는 사실은, 지금껏 들은 말들을 전부 부정하기에 충분했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건, 질문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건 다 거짓말이었다.






여담이지만 조금 덧붙여보자면, 고등학생의 제가 대학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엄청난 특혜였다고 생각합니다. 케임브릿지라는 값비싼 학교를 취미처럼 다닐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차체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죠. 그러니 그때의 마음가짐이 어린 제 무지함도 보여주고 있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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