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릿지 자퇴하기(2)

학비가 향하는 곳

by 블록

대학에 가면 시험을 신경쓰는 대신 사람들과 학술적 흥미를 나누고, 궁금했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질문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과제를 해가면 시간이 싸그리 소멸했다. 생각이란 걸 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변명은 하기 싫었다. '시간이 없어서 못해'라는 말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아 나를 탓했다.


그러나 믿든 안 믿든 시간이 없는 건 사실이었고, 대학에 갔는데도 그리던 대학생활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학술적 흥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엔 내 지식이 수준 미달이었고, 갓 배운 내용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하기엔 1차원적인 개념도 이해하지 못한 게 많았다. 그저 반복적으로 주어진 것들을 배워야 했다. 삭막했다.


1학년 오비탈 세미나와 같은 비슷한 일이 계속 일어났다. 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을 질문할 수 없었고, 내가 원하는 질문이 뭔지 생각해볼 여유조차 없었다. 무엇을 위해 학비를 내고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2학년 1학기, 정보 습득이란 영어를 할 줄 알고 인터넷만 있으면 혼자서 할 수 없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각 과목마다 바이블처럼 읽히는 교과서가 있었고 파인만 렉쳐 시리즈같은 강의 시리즈도 무료로 열려있었으며 stack exchange같은 사이트에는 일개 학부생들의 질문에도 친절히 답해주는 똑똑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질문과 사색의 값을 내는 게 아니더라도 배움에 값을 지불하고 있다 믿었는데, 공짜로도 배울 수 있는 지식임을 알게 되자 정말로 내가 학비를 내는 대상이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1학기가 끝났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학기의 마무리를 축하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테마로 꾸며진 포멀 디너(Super Hall이라 부른다)에 갔다. 고민을 부모님께 털어놓으며 돈이 아깝다 말했을 때 실질적으로 내 학비를 내는 사람인 엄마는 자퇴는 하지 말고 기다려보라고 했다. 좋은 학교에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빠는 거기 있는 것 자체가 그 돈값을 하는 거라고 말했다.


동의할 수 없었다. 다른 경험이 끼어있는 건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대학은 공부를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며 내 학비는 기본적으로는 수업료였다. 경험이란 내가 돈을 낸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니 어쩔 수 없이 달려오는 자매품같은 게 아니던가.


경험은 값이 나가지 않는 것, 아니면 아주 싼 것이라 생각했다. 막말로 상상력의 부족이 아닌가? 간접경험으로도 얼마든지 교훈을 쌓을 수 있다. 어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내가 꼭 실제로 경험해야 할 필요는 없다. 상상해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자리에 앉고, 포멀이 시작됐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나중에 이들과 같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한때 같은 곳에 있었던 추억을 회상하는 미래를 살고 있을까.


이때의 내 걱정이란 뼈를 절일 수 있을만큼 진심이다.


"자퇴하려고 했는데 버텼어요. 그리고 지금은 자퇴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살면서 한 번은 인터넷에서 본 것 같은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아 그래. 힘들었구나.'정도의 감상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힘들었을 거라고 이입이 되지도 않았다. 깊은 고민이 아니라 기다리면 넘어가질 수밖에 없는 일화정도로 치부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고난이 나에게 와보니 너무 현실적이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나고 나서 한 줄의 문장으로 바뀐 고민이란, 고뇌란 얼마나 얄팍해 보이는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머리를 찢어버릴듯이, 몸을 터뜨려버릴듯이 진실한 이 고뇌는 언젠가 한 줄의 얄팍한 감상으로 압축될 수 있을까.


남들이 머릿속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언제나 경이롭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를 둘러싼 분위기가 정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학술적인 농담을 나누었고, 어딘가에 깊은 관심을 가진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애초에 이들 자체가 평범한 인간들은 아니었다.


아주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었으나, 학술 관련 지식을 아무런 마찰 없이 매끄럽게, 그리고 즐겁게 공유하는 장소가 지금껏 있었던가?독특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건 또 어떻고. 나는 언제나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환경에 가고 싶었다.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원했다. 그런데 고려하지도 않을 만큼 당연한 사실이 되어있었다니.


생각이 이어졌다.


혼자 공부할 수 있다고? 천만에.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말이다. 미루기란 '그냥 미루지를 마.' '그냥 일어나서 하면 되잖아.'따위의 말로 고쳐질 수 있는 가짜 이유로 치부되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배가 아파서 약속에 못 나가'만큼이나 진짜다. 돈을 주고서라도 고치려는 습관이고, 몇 번을 시도해도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정도로 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괴롭히는 문제다.


또, 내가 혼자 공부를 한다면 하루에 얼만큼 공부를 해야 하는지 정하는 것이 어렵고 조금씩밖에 지식을 쌓지 못하기 때문에 '이게 의미가 있긴 한가? 잘 하고있는건가? 시간낭비는 아닌가?'하는 고민을 분명히 하게 될 것이다. 대학은 어느 정도의 페이스로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내야 하는지를 수백년에 걸쳐 구축해왔다. 그 수백년의 역사를 나 혼자 눈 깜짝할 새에 재현해낼 수 있다고? 참 깜찍한 생각이다.


"상상력의 부족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내 상상력이야말로 부족하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해보지 않은 경험을 상상하고 체화하는 것보다 그냥 경험해보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우리는 영화를 본다고 해서 그 세계에 가본 것처럼 생생한 기억과 경험을 얻을 수는 없다. 대부분의 경우 영화를 보고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줄거리일 뿐인 것처럼 상상은 디테일을 주기 어렵다. 무의식에 잠재된 것들이 발현하는 방법도 다를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상상으로 경험을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름답기는 하나 손에 잡을 수는 없는 신기루였다.


학교를 다니며 경제, 역사, 물리, 수학, 영어... 이런 정의 가능한 것들은 배웠지만 경험에 대해서는 배워본 저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환경과 상황이 얼마나 값어치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만약 환경과 상황이, 경험이 싼 값이었다면 내가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캐임브릿지가 내게 제공하고 있는 이 기묘하고 기상천외한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가?


여러분께 묻는다. 여러분은 내가 열심히 공유한 앞선 몇 개의 글이 전달한 문화를 독자 머릿속으로 창조할 수 있었을 것 같은가?


자퇴하지 않겠다 생각한 포멀에서 주변 환경의 값이란 보이는 것보다 크단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금박으로 두른 나무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로 덮인 커다란 창문들이 장식한 거대하고 아름다운 홀에 앉아있었기에 이런 깨달음이 든 거였을지도 모른다. 그 또한 갑진 주변환경이었다.


경험은 삶에서 오기에 얼마나 특별하든 '일상'이라는 거대하고 모호한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다. 그렇기에 무시하기 쉬웠운 것 같다.


혹시 내 학비가 정말로 향하는 곳은 이곳의 일상적 경험이고, 명세서에 명시되지 않았을 뿐인 게 아니었을까. 경험은 정량화될 수 없다. 그러니 숫자로 찍히는 값을 책정할 수도 없다. 가격표에 들어가있는 것만 내가 돈을 내는 대상일 필요는 없다는 걸, 이날에서야 나는 깨달았다. 경험이란 오히려 내가 하고 있는 것 중 가장 값이 많이 나가는 가치였다.


아무튼 이걸 왜 적고 있냐면, 여기에 와서 경험해본 게 아니라면 견문이 이렇게 넓어질 수 있었을까 싶어서다.


엄마의 말이 맞았고 아빠의 말이 정답이었다. 이 포멀에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힘들어도 적성에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도 일단 닥치고 버티기로 했다. 절대 자퇴하지 말고 버티자고. 무슨 일이 생길지, 그게 어떤 경험이 될지 모르니 버티고 한번 봐보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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