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순 신분제

by 블록

새로 산 자전거를 가지고 컬리지를 가로지르려는 순간 제지당했다. 나는 이 컬리지 소속 교수(Fellow) 가 아니니 교내에서 자전거를 타면 안된다는 거였다.


'포멀디너' 편에서 소개했듯 이 또한 케임브릿지만의 겉치레 문화 중 하나다.


만약 이 제지가 자전거를 타서 컬리지의 경관을 해치거나 건물에 손상이 갈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면 Fellow의 자전거 이용 또한 제지의 대상이어야 했다. 그냥 학생과 Fellow사이의 차등을 두고 싶으니 만든 아무 의미 없는 규칙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모두가 진지하게 그 허세 빼면 남는 게 없는 규칙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St. John's College 토막상식

컬리지 뒷마당의 가든은 펠로우용과 학생용으로 나뉘어져있다. 펠로우 전용의 가든은 철문으로 잠겨있어 학생은 출입할 수 없다.

학생은 컬리지 내의 잔디를 밟을 수 없다. 그러나 펠로우는 밟아도 된다.

학생은 컬리지 내에서 자전거를 탈 수 없다. 펠로우는 타도 된다.


이렇듯 교수와 학생간의 수직관계는 학교의 규칙으로도 장려되고 있다.


교수님들 뿐 아니라 케임브릿지는 성적 좋은 학생들을 우위에 두기도 한다. 케임브릿지의 성적은 First, Upper Second(2.1), Lower Second(2.2), 그리고 Third 이렇게 네 개다. 이중 퍼스트를 받은 아이들을 굳이 따로 'Scholar'라고 부르며 이들은 종종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일단 'scholar'라는 특별한 이름이 있다.

컬리지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퍼스트를 받은 학생들은 장학금처럼 몇십만원의 돈을 받는다.

Chapel에서 책에 이름을 쓰는 '명예'를 거머쥔다.

Scholar들만을 위한 컬리지 주최 포멀에 초대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t.John's와 Trinity를 포함한 몇몇 컬리지들에는 Scholar에게 기숙사 위치를 먼저 고를 우선권을 줬다.


나에겐 아주 생소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공부로 계층이 갈리거나 명예가 정해지는 곳은 케임브릿지 이전에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내 경험상 한국 중/고등학생의 '쿨하다'는 공부보다는 춤을 잘 추고, 얼굴이 예쁘고, 밴드를 하고 이런 것들이었어서 더 어색했다. 오히려 공부는 '범생이'라는 단어처럼 항상 '쿨하지 않은' 카테고리로 묶이곤 했다.


어쩐지 신분제가 생각났다. 혈통주의로 만들어진 신분제가 아니라, 돈을 버는 능력으로 만들어진 수직관계도 아니라, 힘으로 누른 지배관계도 아니라, 내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멸시되곤 하'지능'을 통해 만들어진 신분제였다.


잔디를 밟지 못할 때마다 내 신분이 교수보다 '아래'라는 걸 인지했고 scholar들의 저녁파티를 볼 때면 그들이 '특별하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각인됐다.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처음 문명사회가 생길 때, 신앙이라는 것이 탄생할 때, 혹은 처음 신분제가 생겨날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오늘부터 너는 나보다 낮은 신분을 맡아."라고 선언하듯이 생겨난 건 아닐 테고. 알지도 못하는 먼 과거를 잘 상상할 순 없었으나 이런 역할극을 시작하는 게 어쩌면 보면 우스운 모습이었을 것 같았다.


비슷한 의문이 들었다.

처음 Fellow들에게 명예를 내리고 당신들 빼고는 잔디를 밟을 수 없다는 규칙을 제공했을 때 이 제도는 신분제의 꼴을 띄고 있었을까? 처음 이 규칙을 접한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잘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 또한 잘 생각할 순 없었지만, 신분제에 대해 두루뭉술히 생각할 때에 비해서는 한 가지 추가적인 생각이 들었다. 없던 신분제가, 혹은 다른 꼴의 신분제가 들이밀어졌음에도 세뇌당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


한국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오히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학교 친구들에게 범생이로 불리는 루저로 보일 것 같아 그들의 '쿨함'을 따라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에 오자마자 한 순간에 뒤바뀐 '쿨함'의 정의에 나는 너무나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정의한 '명예'가 처음엔 잠시 어색했을지언정 곧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학교의 마스터, 즉 그리핀도르의 맥고나걸 교수같은 직책의 사람에게는 Master's Lodge라고 불리는 집이 한 채 제공된다. 그 집의 넓은 가든에서 마스터의 개가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컬리지의 학생 모두가 쓰는 백스의 1/3크기정도로 커다란 멋진 가든이 개 한마리를 빼고 텅텅 비어 있었고, 우리는 도서관에 갇혀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우리는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는 마스터의 정원에 말도 못하는 이 개 한마리만은 편히 들어가 뛰놀 수 있는 것이다.


컬리지 마스터의 집과 정원, 컬리지 강아지 Folly


좀... 우스웠다.

이 얼마나 가벼운 체면인가.


계층, 신분, 권위란 사람들의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너무나도 가볍다. 공부를 잘하는 게 쿨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것 중 하나라고 믿었던 내가 그 반대의 믿음으로 단숨에 갈아탈 수 있을만큼 가볍다.


마스터 가든을 보던 날 생각했다. 무언가가 쿨하다고 믿도록 세뇌하는 것은 이렇게나 쉽다. 그렇다면 그 세뇌에 걸려드는 것은 얼마나 호구 같은 짓인가, 하고 말이다.


새로 생긴 신념이 확고할 수는 없었다. 다수가 주장하고, 은연중에 명확하게 뿌리내린 문화를 모른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신념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리게 하고 싶었다.


팔랑거리지 말자 다짐했다. 숲 속 갈대처럼 흔들리지 말고, 그 밖에서 흔들리는 갈대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관점의 전환을 해보면 현 사회의 주류 관념과 같지 않아도 내가 동경하는 것이 최고의 명예가 될 수 있는 사회가 존재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소리도 된다.


우리는 종종 주어진 관념 안에서 무력해진다. 예뻐야 한다든가, 성공한 직업이 있어야 한다든가, 젊어 보여야 한다든가, 비행만이 쿨함이 될 수 있다든가 하는 관념들 말이다.


그 관념 안에서 무력해지기는 너무 쉽지만 꼭 지금의 사회가 믿는 것이 유일한 믿음일 필요는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내가 봤을 때 이게 더 쿨해보인다면, 밀고나가도 괜찮다. 아직 대중이 설득되지 않았을 뿐, 관념이란 이리저리 옮겨다닐 수 있는 그저 그런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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