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enting system
집안이 여럿이면 집안의 사정도 제각각이기 마련.
컬리지에서의 우리 집안은 콩가루였다. 위로도, 아래로도 모두.
내가 엄마아빠를 처음 만난 건 개강 직후, 컬리지 인근의 피자집에서였다. 이 사람들이 내 부모 될 사람들이라니. 입양 온 가정이 낯설었던 나는 부모를 잘 관찰했다. 그들은 다음번엔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조금 기대가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다음 만남이란 것은 없었다. 부모에게 받은 도움도 없었다.
주변 친구들은 좋은 가정을 유지하기도 했지만 나같이 유기되는 경우도 많았다. 입양가정이란 아무래도 부모의 책임감을 반감시키기에 응집성 또한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는 자식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고, 나와 함께 입양되었던 하나 뿐인 자매는 술이 들어갔을 때만 내게 인사했다. 그 모습이 위선적이게도 보였다.
다음 해 나는 결혼했다. 로잉(rowing) 동아리에서 만난 예쁜 러시아 여자였다. 우리는 함께 팬케이크를 만들면서 학교를 떠나는 마지막 날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몇 달 후 아이 둘을 입양받았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처럼 자식을 버리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나는 학교에 돌아가지 못했다. 와이프는 한부모가정을 꾸려야 했다.
하지만 부모가 한 명인 게 역부족이었던 걸까,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자식들은 비행을 했다. 그들은 부모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싫은 것처럼 가정에 묶여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레 멀어진 아이들. 내가 돌아갔을 때 가족인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직도 딸의 얼굴을 모른다.
나에게는 다섯 명의 부모와 와이프 하나, 애 둘이 있다.
불륜이냐고? 아니.
여기는 다 그렇다.
오늘 소개할 문화는 한국의 ‘짝선배’와 비슷한 'parenting system.'
짝선배처럼 같은 사회에 소속된 선배가 신입생을 이끌어주고, 그 신입생이 2학년이 되어 새로운 신입생들을 도와주는 개념이다. 짝선배를 'parents', 매칭된 후배를 'children'이라고 부른다.
이 Parenting System은 케임브릿지의 많은 사회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국제학생회, 한인회, 컬리지 모두 Parenting System을 운영하고 각각의 단체에서 나에게도 부모가 있다. 그렇게 부모가 다섯 명이 된 거고, 나는 나쁜 학생이라 후배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은 컬리지에만 둘 있다.
그런데 왜 parent's'인가?
이것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 문화가 일종의 가족 놀이이자 역할극이기 때문이다.
짝후배를 배정받으려면 학생들은 1학년 중 누군가를 만나 결혼해야 한다.
혼인신고를 하듯이 1학년이 끝났을 때 컬리지에 배우자 신고를 하고, 2학년으로 진급할 때쯤 학과의 후배를 아이들로 배정받게 된다.
나에게도 이 전통에 따라 결혼한 와이프가 하나 있고 배정받은 자녀가 둘 있다. 위에 서술된 소설식의 이야기가 그것. 내 컬리지 패밀리의 이야기다.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짝선배, 짝후배와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자'라는 관계에 있게 되니 비단 매칭된 위아래, 선후배만이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내 배우자가 된 동급생과도 특별한 관계에 있게 된다. 사람 사이를 돈독하게, 혹은 우리 가정처럼 어색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시스템이다.
컬리지의 패밀리는 콩가루였으나 나는 국제학생회의 아빠를 참 좋아했다.
처음 국제학생회의 parents 배정 이메일을 받은 날이었다. 입학을 하기 전이었고, 나는 한국의 내 방에 있었다. 케임브릿지는 이상하게도 인스타도 아니고 트위터도 아닌 페이스북을 쓴다. 학교를 위해서 중딩때도 깔아보지 않은 페북을 깔고 배정된 아빠의 이름을 검색했다.
이 남자의 프로필은 빨간 드레스를 입고 환히 웃는 여자와 어깨를 두르고 순록무늬의 셔츠와 정장을 입은 채 브이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배경으로 보이는 파티장, 이 분위기가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에 잠깐 부담스럽고 위축됐다.
케임브릿지나 영국/미국 학교들에 파티 문화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라도 눈으로 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겨우 2년간 영국 학교에 있었던 내가 연회장같은 곳에서의 파티 문화를 알 리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파티에 초대됐고 어떤 연유로 열린 파티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이런 문화에 문외한인 나에게 단서가 되는 것들이라고는 없었다. 그 지식의 공백이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3년만에 이 먼 길을 갈 수 있을까?
이 길은 어떻게 이어져있는 걸까?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파티에 가게 된 걸까?
나는 이렇게 잘 살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났다.
가능했으면 좋겠지만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와중에 아인슈타인 느낌의 헤어스타일을 한 곱슬거리는 금발, 파란 눈, 그리고 순록 무늬 정장이 어우러져 예술가같은 포스를 흘렸다. 지금껏 인생에 있어본 적 없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궁금했고, 가슴이 조금 뛰었다. 기대가 됐다.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말이다.
어쩌면 케임브릿지가 이런 연회, 파티 문화에 아이들이 익숙해지도록 포멀 디너와 MayBall(학년 끝에 하는 큰 파티. 미국의 prom과 비슷하다고 보면 됨)같은 것들을 개최하는 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하고 나서 비슷한 행사나 공식 석상에 갈 일이 있을 때를 위한 일종의 조기교육이 아닐까.
혼자 너무 간 상상일 수 있지만 그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교육이 된 것 같기는 하다. 이제는 같은 사진을 봐도 아무런 단서가 떠오르지 않아 위축되기보다는 그 배경이 보인다. 문화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진 것이다.
어쩐지 판타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아카데미'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래에 우리 학생들은 이런 자리에 가게 될 거니까, 미리미리 익숙하게 교육해 두는 거지~' 같은 느낌. 아무튼 이것도 케임브릿지이기에 받는 수혜이자 케임브릿지 포함 소수 학교에서만 받을 수 있는 교육기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는 세계의 권위 있는 학교인 것이 의미가 있어지는 것 같다. 나라마다 그 문화마다 배경마다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거치는 경험의 결이 다를 것이다. 서울대학교는 학문적으로 뛰어난 학교지만 이런 문화와는 거리가 멀 테니 말이다.
중국 출신인 국제학생회 엄마의 사진 또한 자연과 승마 사진이 많아 한국에 있는 것과 훨씬 다른 경험을 하는 것 같았다. 고작 카페에서 앉아있는 사진일 뿐이었지만 정석적인 중국의 화장법과 다른 메이크업, 그녀가 입는 옷들, 포스팅하는 스타일에 그녀가 걸어온 시간과 경험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나있는 것 같았다.
한국에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이고, 훨씬 다양한 경험을 지원받고, 기회를 받는 것 같았다. 이 날은 기대감같은 걸 잘 못 느끼던 나도 가슴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