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모자 대신 나

by 블록

케임브릿지의 또다른 문화를 소개하겠다고 저번 글에서 광고를 했는데, 면목 없지만 저번에 컬리지 시스템을 설명한 김에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면 좋을 것 같아 오늘까지만 컬리지 이야기를 하겠다.


그렇게 해서 오늘 준비한 주제는


"사람들은 31개나 되는 컬리지를 어떻게 고르는지?"


내가 케임브릿지에 지원할 때는 궁금했던 이야기라 오늘은 그 예시로 내가 31개의 college중에서 st.John's를 선택하게 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이 브런치북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 컬리지라는 게 대체 뭔 소린가 싶은 분들은 이전 에피소드들(Cambridge 31)을 읽고 오시면 도움이 되실 것이다.




유튜브에 'Choosing Cambridge Colleges'라고 검색하면 대충 10분 보고 끌리는 컬리지를 고른 사람부터 31개의 컬리지를 일일이 조사한 사람까지 다양한 경우가 나온다.


Bridge of sigh, backs, punting


하지만 내가 st. John's, 줄여서 존스를 고른 이유는 둘 다 아니다. 내 쪽은... 말하자면 모종의 실수 때문이다.


아니, 마법 모자가 마음대로 골라서 주는 것도 아니고, 내 손으로 골랐는데 실수?

어느 컬리지가 어떤 느낌인지 알면 그냥 원하는 거 고르면 되지 않나?


그렇다.

하지만,


몰랐다.


존스를 고르는 이유는 대부분 '돈'이다. 많은 장학금을 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학생에게는 가차없고 자국민에게만 관대한 영국 학교의 특성상 국제학생인 내가 그 장학금의 수혜자가 되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나에게 익숙치도 않은 영국 대학 지원은 고역이었다. 나 또한 한 명의 한국인으로써 미국 문화에 더 익숙해서 collge가 대학인 줄 알았고, 이 컬리지 시스템이 굉장히 헷갈렸다. 하지만 나는 영국에서 살던 사람도, 매년 옥스포드와 케임브릿지를 몇십명씩 보내는 학교에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으므로 설명해줄 선배나 지인, 선생님, 하다못해 내가 지금 쓰고있는 이런 글도 없이 혼자 모든 걸 찾아봐야 했다. 그렇다고 입시철 그 바쁜 와중에 31개 컬리지의 정보를 다 뒤져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내가 취한 방법은, 저녁을 매일 주는 컬리지를 고르기로 한것.

이것이 첫 번째 실수다.


나는 요리를 못한다. 파프리카를 썰다 손가락까지 썰어버린 경력이 있고, 닭가슴살을 찌다가 냄비를 두 번 태웠으며 가족은 '네가 구운 스테이크는 고기의 낭비'라며 나보고는 고기에 손대지 말라고 한다. 아, 며칠 전에는 포리지를 만들다 냄비를 또 태웠다.


포멀디너와 컬리지 시스템에 대한 좁고 얕은 이해를 바탕으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구원책은 해리포터였다.


포터 삼총사는 매일 저녁 커다란 홀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지금껏 한 리서치의 결과, 포멀디너는 해리포터 연회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포멀디너가 '저녁밥'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대단한 착각이라는 사실을 일러두어야겠다. 저번 글에서 나는 포멀디너에 가려면 먼저 '예약'을 해야 한다 밝혔다. 그렇다. 저녁식사와 포멀디너는 달랐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나는 생각했다. 요리란 내 삶에 있을 수 없다.

내 저녁은 완벽하게 학교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니까... 포멀디너가 주 5회 이상이 아니면 나는 이틀 이상을 굶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존스에 합격하고 기숙사 위치를 고를 때도 식당이 숙소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최우선으로 봤다)


마침 잘 된 일이었다. 31개를 다 조사할 시간도 없는데, 포멀디너가 주 5회 이하인 컬리지들을 다 지우니 10개 언저리의 컬리지가 남았다. 신기하게도 건물도 예쁜 컬리지들만이 남았다.


그 다음은 쉬웠다. 어떤 이유로든 마음에 안드는 이름들을 지웠다. Trinity는 찾아보니 종교적인 이름이라 싫다 따위의 이유였다(바보같은 이유다. St.John's 의 saint가 성경이 아니면 어디서 나왔겠는가?).


이런저런 이유로 컬리지들을 제거하다보니 존스를 포함해 두 개만 남았는데, 최종 선택지가 존스가 된 건 존스가 미술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기자기하고 예쁜 초가집 스타일의 미술실. 동아리에 들어가서 사용할 생각을 하니 설렜고, 나는 존스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Chapel과 기숙사, 산책로


다 내 계획대로 되었을까? 언질을 준대로 아니.


애초에 이걸 계획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위에 나열한 것 중 맞아떨어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저녁식사는 포멀과 다르다. 포멀디너는 차려입고 돈 내고 예약해서 가는 프로모션 저녁이고, 저녁은 학식당에서 따로 제공한다. 그 어떤 컬리지에서도 매일매일 점심저녁을 사먹을 수 있었다. 호그와트느낌의 저녁연회는 무슨 1학년 때는 이 학식당이 공사에 들어가는 바람에 나는 텐트에서 밥을 먹게 됐다.


내가 들어간 해에 컬리지 미술 동아리가 폐부됐다. 혼자서도 미술실을 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으나 알잖은가, 동아리가 없으면 굳이 다른 건물까지 가서 그림그리기가 귀찮다. 미술실으로의 행보는 무기한 연기되다 카드를 잃어버린 건축학도를 위해 문을 열어준답시고 딱 한 번 가보았다.


생각해보면 케임브릿지라는 학교를 덕질하다 오는 사람들이 아니면 다 바보같은 이유로 컬리지를 고르는 것 같다. 어차피 입학하기도 전에 내부 지식을 다 안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뭐. 아무튼 이걸로 내가 세인트 존스 컬리지를 고른 이유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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