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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기 Aug 17. 2024

독립했던 둘째 딸, 다시 본가로 들어왔습니다

삼십 대에 캥거루족이 된 건에 관하여

"엄마, 나 아침 안 먹어!"

"... 다 차려놨는데.. 너 어제 아침 먹고 간다며!"

"아 나 오늘 바빠!"

"... 그러게 일찍 좀 일어나지! 너 아침 먹고 간대서 다 차려놨는데 이게 뭐야!"

"아 진짜 못 먹는다고!"

"됐어, 너 알아서 해! 배고파서 죽든 말든..."


고등학생 딸이 등교하는 아침 풍경이 아니다. 한국 나이 31살, 만 나이로도 서른이 넘고 직장을 다닌 지는 5년이 넘은 딸이 사는 집의 풍경이다.


엄마 집에 다시 돌아와 살게 된 지는 햇수로 3년이 넘었다. 처음 취직한 직장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취를 했지만, 적응이 안 되어 이래저래 하다 다행히 엄마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의 직장으로 이직했다.


아니, 사실은 직장 적응도 적응이지만, 혼자 살기가 너무 외로워서 본가로 돌아온 게 맞다. 엄마가 구해준 자취방은 혼자 살기엔 유독 넓은 편이어서 어딘가 휑한 느낌까지 있었다. 방구석구석은 컴컴하고 무시무시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다가 문득 돌아본 어둠은 이곳이 엄마 집이 아니며, 나는 엄마 없이 혼자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상기시켰다.


벌렁벌렁한 가슴을 부여잡고 이불 속에 들어가 아이처럼 두려움을 참아야 했던 밤도 많았다. 나는 엄마 없는 자취방에서 왠지 슬펐고 외로웠고, 사무치게 쓸쓸했다.


연애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이 외로운 고독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물론 외로운 상태로 한 연애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결말을 맺었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건 되돌아 생각해 봐도 맞았다.


나는 결국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이직에 성공했다. 목표는 오직 하나, 엄마 집이었다. 무조건 엄마 집에서 가까운 위치, 또는 엄마 집에서 통근이 가능한 거리에 있는 직장만이 필요했다. 워라밸이든 업무 로딩이든 다 필요 없었다. 나는 일단 엄마 품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간절한 바람 덕분일까, 수도 없이 날린 원서 덕분일까. 다행스럽게도 난 여러 직장 중 엄마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여기만 되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베스트인 위치였다.


엄마 집으로 돌아간다! 스물여덟의 난 이제 혼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자취방 짐을 정리하고 이사를 준비하면서 엄마도 나도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엄마도 타지에서 고생하던 둘째 딸이 내심 안쓰러웠던지,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나보다도 더 신난 표정이었다.


그러나 짐을 정리하고 본가의 안락한 내 침대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단박에 깨달았다.


맙소사, 여기 너무 시끄럽잖아?


탕탕탕, 애호박 써는 소리. 웅얼웅얼, 시끄럽게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 쨍그랑대며 요란한 젓가락 소리. 아빠가 밥 먹으며 헛기침하는 소리. 늘상 틀어놓는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


이 모든 소리가 퇴근 후 녹초가 되어 침대에 널브러진 딸에게는 방해가 되었다. 불과 며칠 전 살던 자취방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였다. 자취방에서 퇴근 후 내 곁을 지키는 건 오로지 침묵뿐이었는데. 본가에서는 정신사나울 정도로 생활소음이 많다.


엄마, 아빠, 나, 세 식구가 사는 집이라, 자취방과 비교했을 때 어른 두 명이 더 늘어난 것뿐인데. 아니, 이 집은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는 거야?


본가로 돌아가 따스하고 안온한 엄마 품을 즐기고자 했던 희망은 돌아온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와장창 깨졌다. 자기가 보든 말든 티비를 틀어놓은 채 나가버리는 아빠, 주방에 있을 땐 항상 라디오를 틀어놓고 정신 사나운 광고까지 다 듣는 엄마,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일어나 요리하고 씻는 소리, 때맞춰 밥 먹으라는 잔소리, 뭐가 잘 안 되는지 낑낑대며 도움을 청하는 아빠, 산책 갈 때 같이 가자고 하는 엄마...


아니 따뜻하긴 하다. 디지털문맹인 아빠를 도와주고 설거지하는 엄마 옆에서 수다를 같이 떨고 하다 보면, 분명 자취방에선 느낄 수 없는 사람의 온기를 물씬 느낄 수야 있다.


그러나 말이다, 이 온기라는 것은 원래 적당할 때에 기분 좋은 것이 아닐까? 엄마 아빠의 시끄럽고 따스한 온기를 매번, 매 순간, 매일 느끼고 있자니 나는 어느새 침묵이 아주 조금.. 아니 꽤나 많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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