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나기 Aug 17. 2024

서른한 살 딸, 아직은 엄마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엄마 나랑 평생 같이 살앙

"전세를 얻는다고?"


슬금슬금 엄마 방에 들어가 '엄망.. 아깐 미안행..'하고 애교 섞인 사과를 늘어놓은 뒤, 아까부터 찾아보던 호갱노노 어플을 들이밀었다. 아까 싸울 때 분위기로는 '그래! 잘 생각했다. 당장 나가!'라고 할 줄 알았던 엄마는 의외로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니가 어딜 나가게? 그냥 집에서 다니지?"


그렇게 말한 엄마의 눈이 나와 딱 마주쳤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엄마 아까는 나가라매?"

"그건.. 그냥 해본 소리지. 아니 뭐 너도 어른이고 나가려면 나가도 괜찮긴 한데. 너 직장도 여기고 집에서 다니기 편하잖아."

"아니 그렇긴 한데~"


낄낄 웃으며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눈 결과, 엄마는 나와 비슷한 마음인 것 같았다. 서른한 살 딸래미가 본가 집구석에 들어앉아 있는 건 불편한 일이지만, 또 독립하자니 걱정되는 점도 많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이 나이쯤 먹었으니 한 명의 어른으로서 독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엄마 마음에는 딸래미가 웬수 같고 짜증스러운 마음과 물가에 내놓은 애기마냥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나 보다. 너를 위해서 독립이 좋다고 말하면서도 엄마는, 본가에서 지내는 게 여러모로 생활비도 아끼고 돈도 모으고 편하고 등등 여러 가지 장점이 많지 않냐며 나를 붙잡았다.


그 말에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엄마가 나한테 항상 해왔던 말을 떠올렸다. '넌 밥은 꼬박꼬박 얻어먹고 관리비도 안 내면서 엄마한테 생활비도 안 주니.'


"엄마 언제는 나한테 생활비 달라매."

"그래! 그건 맞지. 너 생활비도 안 주잖아."


내 말에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는지 엄마도 와다닥 말하다가, 곧 말을 바꿨다.


"집에 있을 때 돈을 바짝 모아야 하는 거야. 너 엄마가 다 해줄 때 월급 잘 애껴서 다 니 돈 해."


이럴 때마다 엄마의 사랑이 참 고맙고 뭉클하다. 나는 괜히 히히 웃으며 엄마에게 애교를 부렸다. 아잉 고마와앙~ 그럼 나 엄마 집에 좀 더 얹혀살까?


그러나 다 큰 딸이 비비적대며 앵기는 게 엄마에게는 또 부담이었나 보다. 엄마는 표정이 좀 변하더니 나를 슬슬 밀어냈다.


"으이고. 서른 하나야! 밥도 못해, 빨래도 못해, 시집가서는 어떻게 살라고 하니?"

"아아이잉. 결혼 안 할래앵. 평생 엄마랑 살랭."

"허! 처! 기가 막혀서. 엄마는 혼자 살 거야!"

"아아이잉. 나랑 살아아앙."


엄마는 기막혀하면서도 내심 좋아하는 표정이긴 했다. 엄마 마음에도 양가감정이 있는지. 맨날 나랑 똑같이 왔다리갔다리다.


"알겠어 그럼. 당분간은 집에서 지내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지 뭐."


사실 나도 내심 엄마가 붙잡아주길 바랐었다. 엄마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은 이유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혼자 살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 라디오 소리도 안 들리고, 사람도 없는 적막한 원룸에서 혼자 살 자신이 없다. 그리고 엄마 밥도 못 먹는다. 퇴근하고 씻으면 딱 맞게 차려져 있는 따뜻한 밥상. 핸드폰 하면서 낼름 먹고 쏠랑 방에 들어가 버리면 남은 반찬을 정리하고 설거지하는 건 엄마 몫이다.


그게 미안하고 고맙고 하긴 하지만, 배은망덕하게 낼름 받아먹는 건 자식으로서의 특권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설득에 못 이기는 척, 게으르고 뒹굴거리는 딸래미 역할을 당분간은 좀 더 누리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 일은 이렇게 일단락이 난 듯했다.

이전 02화 캥거루족 둘째 딸, 60대 엄마와 싸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