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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기 Aug 17. 2024

캥거루족 둘째 딸, 60대 엄마와 싸웁니다

아 엄마, 라디오 좀 꺼!

그날도 어김없이 캥거루족 둘째 딸과 60대 엄마는 싸웠다. 싸움의 발단은 엄마가 설거지할 때 항상 켜놓는 라디오였다. 라디오에서는 60대의 엄마가 들을 수 없는 미세한 고주파 삐 소리가 났고, 나는 그 소리를 참다 참다못해 방에서 빽 소리쳤다.


"아 엄마, 라디오 좀 꺼!"


엄마가 순간 움찔했는지 달그락거리던 식기 씻는 소리가 멈췄다. 그러나 잠시간의 침묵 끝에 엄마가 접시를 와장창 내려놓으며 버럭 소리 질렀다.


"니나 조용히 해! 엄만 라디오 들을 거야!"

"아아아악-! 시끄러워! 시끄러워 죽겠다고!"


30대 딸의 지랄병에 엄마는 결국 졌다. 신경질적으로 라디오를 팍 끄더니 또 화가 난 침묵이 전해진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침대에 누워 폰을 했다.


참다못한 앞치마 차림의 엄마가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소리 지른다.


"여기가 니 집이니? 니 집이야? 여기 엄마 집이야! 너 나가!"

"안 나가! 내가 돈이 있어야 나가지!"

"엄마가 돈 해줄 테니까 어디 오피스텔이라 얻어서 나가. 너랑 도저히 못 살겠다!"

"나라고 뭐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알아? 내가 제일 나가고 싶어!"

"그래 나가라! 나가! 다 컸으면서 왜 엄마 집에 비비고 앉아 있어!"

"아아아악--!!"


나는 침대에서 짜증을 내며 난리법석을 피웠다.


"나도 이 집에서 살기 싫어! 진짜 숨 막히고 답답해 죽겠어! 나가야지, 이놈의 집구석!"


불과 몇 달 전 독립한 자취방이 무섭다며 질질 울던 둘째 딸은 온데간데없고, 철없이 지랄발작하는 웬수가 방구석에 들어앉아있으니 아마 엄마는 기가 막혔을 것이다.


내가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 나가 있을 때는 그렇게 들어가고 싶다고 밤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하소연하고 울고 시무룩해있었으면서. 본가에 들어와 따끈한 엄마 밥 먹고 등 따숩고 배부르게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갑자기 짜증이라니.


엄마는 그 후에도 내가 얼마나 빨래를 안 하고 청소를 안 하고 집안일을 안 돌보는지를 설파했다. 나는 나도 내 할 일이 있고(사실 게으름 피우느라 미뤘던 거였다) 나는 일하는 사람이니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손가락 까딱 할 수 없다는 변명을 했다.


엄마는 기가 찬 얼굴이었다. 분명 지 아빠랑 똑같은 소리 한다고 생각했겠지.


"이래서 어른끼리는 한 집에 못 사는 거야. 사공이 셋이나 되는데 집이 제대로 굴러가겠니?"


투덜거리며 내뱉고 나가는 엄마 말에 마음 한구석으로는 조금 미안했다. 정말 배은망덕한 딸래미가 아닐 수 없다. 독립 안 한 자식이라는 게 나이 들어 머리 굵어졌다고 집에 있으면서 맨날 잔소리나 하고. 시비는 옴팡지게 걸면서 집안일 한 번 안 하고 엄마 한 번 돕지를 않다니.


침대에 뒹굴거리다 핸드폰으로 호갱노노를 켰다. 괜히 엄마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또 엄마 말대로 이 나이쯤 먹었으니 독립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호갱노노 어플을 켜고 오피스텔, 원룸, 투룸을 설정했다. 월세 제외, 전세만, 집보다는 직장에 쪼끔 더 가까운 동네로. 검색 버튼을 눌렀더니 보라색 네모 박스들이 떴다. 원룸은 6천.. 전세 1억 2천.. 5천.. 2억짜리도 있어 눌러보니 평형이 좀 넓었다.


그래도 직장생활을 꽁으로 한 건 아니라서 나에게도 모아둔 돈은 좀 있었다. 저축한 돈에 대출까지 끼면 그래도 1억 중반 정도는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버팀목 전세자금이라고 연봉 4천5백만 원 이하인 사람에게 저금리 전세대출을 해 주는 제도가 있기도 했다. 내 연봉, 어딜 가나 쥐꼬리만 하다는 소리밖에 못 듣지만 이럴 때는 도움이 되기도 하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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