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나기 Aug 17. 2024

엄마집에 얹혀살던 서른한 살 딸, 독립하기로 했습니다

각자 사는 게 마음 편해!

그러나 갈등은 어김없이 또 일어났다. 바로 짐을 정리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사실 엄마와 나의 정리 방식은 좀 달라서, 본가로 돌아온 그때부터 나는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던 차였다.


어른 세 명이 살기에 국민평형 33평의 집은 좁다고 할 순 없지만, 내가 자취방을 정리하며 가져온 짐 한 무더기와 언니가 이사하며 두고 간 짐 한 무더기 때문에 집안 곳곳에 이삿짐센터처럼 물건이 쌓여 있었다.


엄마도 젊었을 때야 그걸 일일이 다 풀고 정리해서 옷장이나 창고에 넣었겠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걸 그렇게 열심히 하기가 귀찮다고 했다. 하지만 베란다 너머 한가득 쌓인 짐을 보면 나는 항상 숨 막히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 집에 얹혀살다 보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지. 그러나 이놈의 짐은 정말 숨 막히게 많았다. 가만히 살펴보면 쓰지 않는데 구석에 처박아둔 물건들도 많았고, 쓸만한 데 안 쓰는 것들도 있었다.


버리든가, 팔든가. 어떻게든 이 집구석의 물건들을 처분해야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해서 당근에 팔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다 정리할 테니까 건들지 말라고도 했다.


집 정리를 한답시고 나대는 서른한 살 딸내미를 엄마는 꽤나 한심하게 보는 듯했다. '그거 팔아서 뭐 하니. 대충 정리해서 버리면 되지.' 그러나 그 말에 나는, '아니 엄만 버리라 해도 버리지도 않잖아. 아주 물건들 다 끌어안고 살지!'라고 잔소리했다.


실제로 그랬다. 나나 언니가 버려달라고 내놓은 물건들을 엄마는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안 입는 옷들이나 더 이상 안 쓰는 기계들, 노트북, 의자 등 물건들을 버린다고 내놓으면 엄마는 슬며시 그것을 끌어다가 자기 방에 쟁여놓곤 했다. 나중에 엄마 방에서 물건을 찾다가, '아니 이걸 아직도 안 버렸어?' 하는 물건을 마주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당근을 시작했다. 안 쓰지만 팔 수 있을 만한 물건들을 모으고, 물품 사진을 찍고, 상품명을 인터넷에 검색해서 원가를 알아보고, 적당히 반값 그 이상으로 책정하여 당근에 올렸다. 상당한 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온 방에 짐을 늘어놓고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보며 엄마는 '으이구, 으이구!' 하면서도 더 말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사달이 났던 거다.


"어, 어! 아니, 이것도 팔려고?"


엄마가 기겁을 하며 물건 하나를 집었다. 별 쓸모없어 보이는 파우치였다. 내가 '어 당연하지'라고 가볍게 얘기하자 엄마는 파우치 지퍼를 열어 안을 살폈다. 그리고 더 기겁했다.


"아악! 여기 안에 있던 건 어디 갔어?"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 파우치 안에 뭔지 모를 종이쪼가리 하나가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별 의미 없을 것 같아서 밖으로 꺼내놨다. 나에게는 그래도 아직 쓸만해 보이는 파우치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 반응을 보니 뭔가 중요한 거였던 것 같다. 나는 생각을 더듬다가 조심조심 말했다.


"뭐 한지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나 그거 버리진 않았는데.. 어디 갔는진 모르겠네."

"아이구 어머나! 어떡해애애!"


그건 사실 아주 예전에 엄마가 어디선가 받아와서는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한문 글씨라고 했다. 누구 유명한 사람에게 글씨를 맡기고 받아온 거라더라. 엄마는 나중에 그걸 액자로 만들어서 걸어 놓을 생각이었다는데, 그걸 내가 당근 한답시고 홀라당 정리해 버린 거다.


"엇.. 어.. 그거 나 안 버렸는데.."


난리 치는 엄마를 위해서 온 집안을 뒤졌다. 분명 파우치에서 꺼내 놓기만 했지 버린 기억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찾을 수는 없었다. 아마 기억 저편의 내가 버려버린 것일 수도.. 쓰레기통까지 뒤졌지만,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한 지 며칠 된 터라 아마 이전의 쓰레기통은 벌써 쓰레기장으로 가버렸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앗.. 엄마.. 미안해.."

"... 아냐. 그거 뭐, 쓸 데도 없는 거다. 찾지 말고 그냥 둬~"


엄마는 크게 화내진 못하고 그냥 며칠 시무룩해져 있기만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더 미안했던 것 같다. 방에 늘어져 있는 당근 판매할 물건들도 다 꼴 보기가 싫어졌다. 괜히 나대다가 엄마 물건까지 없애버리고.. 약간의, 아니 상당한 후회가 마음에 찾아들었다.


엄마랑 싸우고, 엄마의 물건을 날려먹고 엄마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 되자 나는 다시 한번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독립을.


애초에 이렇게 된 것도 엄마랑 나랑 정리 스타일이 달라서이고. 내가 이 집에 있지 않았다면 엄마의 정리 스타일에 답답함을 느낄 일도 없었을 터다. 다 큰 성인이라 자기 의견을 고집부리는 자식과 함께 사는 게, 엄마 입장에서도 꽤 힘들겠다 싶었다.


집에서 나가는 게 나에게 조금 불편하고 힘든 일일지라도, 집에 남아서 엄마를 상당히 고생시키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나갈 때가 되었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오피스텔 전세를 구해 독립하기로 했다.

이전 03화 서른한 살 딸, 아직은 엄마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