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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근무에 대해 알려드림.

# 파견말고 퇴사 어때?

근 15년 정도 한 직장에서 근무하다 보너무너무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이 때때로 찾아온다.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특유의 조직성향이 있는 곳에서 소심하면서도 뾰족한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숨기고 밝은 척, 착한 척하며 살아가는 것은 지치고 힘든 일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나를 숨기고 애쓰고 일하다 보면 저녁에는 더 이상은 숨겨지지 않는 나의 못된 성질이 튀어나와, 결국 죄 없는 내 아이들과 남편에게 비수를 꽂곤 한다. 애들을 재우고 눈물을 흘리며 하는 반성이 거짓은 아닌데, 다음 날 여지없이 또 성질을 부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이게 루틴이 된 건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파견근무 지원자를 뽑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파견근무지는 두 군데가 있었는데 조금 인기가 좋은 내근직과 인기가 없는 외근직이 있었다. 어느 쪽이어도 관계없었다. 내 목적은  스트레스의 원흉인 이 '가족적인'분위기의 조직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기가 있는 곳은 나에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외근직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파견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이곳에 온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하는 일은 업체가 불법 운영을 하는 지를 점검하는 일이다. 외부 업체 감사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오전엔 전날 점검 서류를 처리하고 오후엔 업체 2~3군데를 돌며 점검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처음 왔을 때 전 사무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각또각 구두와 작은 숄더백을 메고 인사를 했더랬다. 반쯤 정장스타일을 하고선.  옆에서 이러면 곤란하다며 준비물 읊어주듯 백팩운동화를 준비하라고 한다. 서류가 많아서 큰 가방을 사라는 건가 보다 하고 빅 숄더백을 준비했다. 백팩은 대학교 때 이스트 백 외엔 메본 적이 없는데 뭘 살지도 모르겠고 스타일도 이게 낫겠다 싶어 누빔이 된, 노트북  정도가 들어가는 가방을 멨다. 운동화도 딱히 선호하진 않아서 단화를 신었다.


어른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선배님 말씀을 허투루 들으면 오십견과 관절염이 생긴다. 세상에나 서류가 얼마나 무거운지 일주일 만에 숄더백 연결고리가 끊어져버렸고  매일을 만보이상 걸으니 반치수가 큰 단화에 내발이 꽉 차는 신기한 현상을 보게 되었다. 또한 백팩의 필요성은 단지 건강만이 아니었으니  술에 취해 조사 서류를 놓고 오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자리에선 드시 백팩을 멘 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묘하게 납득이 가서 그날부로 백팩과 운동화로 갈아탔다. 나름 장비를 구비했음에도 하루 종일 볕을 쬐고  돌아다니니  소식좌였는데 나도 모르게 고봉밥을 먹고  밤엔 애들보다 먼저 곯아떨어지는 일 많아졌다. 건강해진다기보단 우람해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업체 간 이동이 도보가 가능하면 좋은데, 이건 걷기도, 버스도 애매하고 지하철도 없는 경우에는  따릉이를 이용한다. 관리 상태나 대수는 예전만 못하지만 애매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자전거 바구니에 가방을 싣고 달리는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카드 배달 알바로 투잡 하냐고 묻는다. 아 , 아직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있구나. 다 때려치우고 바리스타 하겠다고 했더니 늙어서 안 뽑아 준다며 다들 비웃길래,  그럼 우리 동네에 KFC에는 내 이대 아줌마가 있으니 거길 가겠다 하니 그 아줌마는 거기 건물주일 거라고. 헛생각 말고 조신하게 출근하라고들 했다. 이놈의 직장을 벗어나긴 글렀구나 했는데 자전거 타고 카드배달은 가능하겠다. 네이버지도로 최단동선을 기똥차게 찾 능력도갖추었으니 딱이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이곳도  각종 골치 아픈 일들과  사건사고들이 없지 않고 전보다  몸이 고된 것도 맞. 그렇지만 정년까지 족히 20여 년을 함께 할 사람들과 일하는 것과 고작해야 1~2년을 함께할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의 경우 늘 내 행동 하나하나 평가받는 느낌에다가 구설수를 의식해서 항상 실수하지 않도록 긴장하보면 진이 다 빠지는 듯 하다. 그러나 노력이 무색하게도 긴장하면 할수록 내 행동거지는 더 어색하고 삐걱거려서 오히려 이불 킥할 일들을 매번 만들고 만다. 여기는 에잇 모르겠다 마인드가 가능하다. 혹시 뭔가 실수하더라도 내 마음이 훨씬 가볍다. 겨서 해결하지 않고 잘 몰라서 그랬다 당당히 오픈하니, 해결할 때도 더 가벼운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어떠냐면, 파견 반년차. 몸은 고달프고 마음은 전보다 조금 편한데,  나는 다 그만두고 바리스타가 하고 싶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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