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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초롬한 아줌마

여전히 성장하고 있어!

아줌마가 된다는 것은 약간 섭섭하면서도 몹시 편한 일이다. 나는 더 이상 수줍지는 않다. 어릴  적돈을 내고 산 물건에 작은 흠이 있어도 말을 못 해 그냥 집으로 들고 온  수두룩 빽빽다. 또 그런 흠에 관대하냐면 그렇지는 않다. 나름 헐랭 한 완벽주의자인 나는 그 흠을 내선에서  어찌해볼까 하고 문지르고 또 문질러본다. 그렇게 속상한 마음을 부둥켜 앉고 자기를 십수 년. 이제 아줌마가 되었고 나를 위해서는 하지 못할 말들을 아들들을 위해 용기를 내는 용사가 되었다.


아이들이 베이블***라는 팽이 놀이에 빠져지 내던 나날들 , 팽이 꾸러미와 팽이판을 들고 다니며 온 동네 아이들과 대결을 하고 다녔다. 학원도 스케줄도 딱히 던 시절, 유치원에 다녀와서 팽이를 들고나가 놀고 저녁에 개선장군처럼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자면 그렇게 귀엽고 흐뭇했다.

마침 그 팽이의 회사는 프로모션차 대규모 팽이대회를 코엑스에서 열었다.  아이들은 가고 싶다고 난리였고 나도 열의를 갖고 신청했었다. 그러나 이 대회는 열의가 있다고 신청이 되는 대회가 아니었으니 정식참가 접속하자마자 마감이었고 대기자 명단에도 겨우 이름을 올렸다. 가서 좀 기다리지 뭐 하는 마음으로 간 행사장은 발 디딜 곳 없을 정도로 빽빽했다.  대기자는 하염없이 밖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대기한다 해도 참가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남편까지 대동한 나는 아이들에게 면이 없었고 화가 났다. 리셉션에서  따지고 들었다. 직원들은 이러는 사람이 한둘은 아니었는지 별 수 없다는 대응으로 일관했지만 정작 놀란 이는 남편과 아이들이었다. 엄마가 왜 저러나 싶었던 게다.

결론은 항의는 아무 소용이 없었으며, 나의 깊은 내면의 떽떽이가 의식으로 소환는 것이었다.


한번 소환된 떽떽이는 처럼 들어갈 줄 몰랐다. 비슷한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주저하지 않았다. 아이들 일이라면 더 용기를 냈다. 아이들이 속으로 삼키는 엄마를 배울까 봐 더 애를 썼다.  그렇게 솔직하고 거리낌 없는 아줌마가 되어갔다.


인사발령이 있고  아줌마 아저씨들 쳐났던 사무실에 젊은이들만 가득 차게 됐다. 처음엔 낯을 가리나 싶었다. 반갑게 양손 흔들며 인사를 는데 정중한 목례가 돌아왔다. 시답잖은 농담을 건더니 난처해했다. 출근길에  만나면 날 본 거 같은데 못 본 척하고 경보를 한다. 밥을 먹자는데 썩 반기는 눈치가 아니다. 옆에 직원이 보다 못해 말한다.  아니 과장님이 자꾸 밥 먹자고 하고 말 걸고 그럼 좋아? 내버려 두라고 애들을.

아뿔싸. 기사 나도 직장선배가 불편하다. 못해주면 싫고 잘해줘도 불편하다. 아무렴. 그동안 아줌마력을 너무 키워서  사무실에서도 나 편하자고 너무 스스럼없이 대했나 보다. 이제 조금 낯가림 이 필요한  때. 원래 나도 새초롬하고 그랬다고.


고등학교  배운 헤겔의 변증법이 떠올랐다. 하나의 사고나 철학은 그 반대되는 사상에 의해 도전받고 결국 그 중간 어디쯤에서 융합하는 방식으로 진리에 다다르는 과정. 어쩌면 마음도 비슷한 과정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과수줍음 상태)-반(과아줌마상태)-합(살짝 새초롬하면서도 필요할 땐 솔직 상태)


스스로 과함을 깨닫고 그 어디쯤 정도를 찾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몹시 기특해졌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빨간 미니원피스를 입은 아가씨가 앞에 섰다. 연신 머리를 쓸어 올리는 것을 보니 오늘 예뻐야 하는 날인 것 같았다. 근데 이를 어쩐담. 등에 원피스 안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빨간 원피스인데 안감은 희끄므리한 색이어서 더 도드라졌다.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손이 허공에서 한참 망설였다. 아줌마는 이런 것을 참지 않지만,  나는 살짝 새초롬하므로 그저 시선을 거둔다.  


됐어.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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