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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못하면 반드시 잘하게 되는 것.

핸드폰 사진앨범은 어떻게 정리해요?

내 핸드폰은 공공재에 가깝다. 백과사전보다야 검색이 편하고 데스크탑을 켜고 기다리는 것보다 신속한, 녀석들의 공용 장난감. 그렇다 보니 어느 날 열어본 핸드폰 사진첩은 우리 집 꼬맹이들이 눈을 까뒤집고 반쯤 벌거벗은 채로 주구장창 찍어댄 엽기사진로 가득하다.


깔끔한 남편은 아이들이 핸드폰을 만지는 것도 싫어할뿐더러 놀러 가서 사진을 찍어도 장소별, 시간별 한 장씩만 남겨둔다. 엑기스만 정리된 사진첩. 지금 그대로 출력해서  기념앨범으로 소장해도 될 만큼 정리가 잘 되어있다.


인터넷을 서핑하며 캡처한 언젠가 하고 싶은 미용실 헤어 사진, 인생샷을 건지려 한 장소에서 백장정도 찍은 사진 세트, 회식 때 전송용으로 찍은   보기 싫은 직원들 기념사진까지 마구 혼재되어 있는 내 핸드폰 사진첩을 보면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도 핸드폰이 왜 이리 정신이 사나운가 싶어 어느 날은 한번 정리 시도해 봤다. 미용실 사진들은 지울 수가 없다. 다음에 다시 찾으려면 또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겠나. 이것들은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포즈로 찍었지만 표정이 다 다르다고. 엽기 사진은 귀엽잖아 크면 이사진으로 아들들을 협박해야지.

그렇게 추리다 보면 결국 피티샘에게 보내려 찍었던 식단사진 몇 컷을 삭제하고는 앨범 정리는 다이어트와 함께 물 건너가버리고 만다.


고백컨대 정리가 안 되는 건 핸드폰 사진첩뿐만은 아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던 시절 '진행 중 서류'는 서랍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책상 위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업무를 내게 물려준 동기는 내 책상을 보고 반갑다 친구야를 외치며 자기보다 더 심각한 정리상태에 흐뭇해하곤 했다.


그렇다. 나는 정리에 완전 젬병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는 항상 마음이 급했다. 차분히 지금 주어진 일에 집중을 다하지 못하고, 다음, 그다음 일이 걱정되어 한번에 동시다발로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곤 했다. 완료된 파일은 없고 진행 중 노랑 파일만 책상 한가득인 상황. 정리를 못한다고 해서 정리 안된 상황이 편안한 것은 아니다. 나도 차분하게 한 개씩 정리하면서 일하고 싶다고. 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구박하던 시절을 한참 지나왔다.


그러나 사람 다 거기서 거기랬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고로 특정분야에서 특출 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면 어딘가는 모자란 구석이 생기기 마련이다.

완벽한 정리습관을 가진 남편은 자기가 두어야만 하는 곳에 찾는 물건이 없는 순간 멘붕에 빠진다. 그 물건이 들어갈만한 공간을 조금만 고민해 보고 시선을 약간만 틀어도 보이는 것을 찾지 못했다. 아니 왜 저러나 싶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뭔가를 찾아본 적이 없으니까.

서류가 산더미 같이 있어도 나는 과장님이 한주임을 부르는 순간 원하는 서류를 찰떡같이 찾아 드렸고 관련 규정이나 법규를 찾는데도 남들보다 훨씬 빨랐다. 나는 정리가 안된 환경에서 찾는 능력이 발달된 반면, 정리왕인 그는 뭘 도통 찾질 못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4331장의 사진이  마구 흐트러진 사진첩을 보는 게 덜 불편해진다. 에이 찾았는데 없는 거보다 낫지 뭐. 정리 좀 못하면 어떠리. 필요한 때 찾아내면 됐다.


뭐, 작은 바람이라면 정리하는 능력을 높이 사는 만큼  찾아내는 내 초(?) 능력을 좀 우대해 주는 시절이 죽기 전에 좀 왔음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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