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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가볍고 가벼운
Sep 16. 2023
어깨에도 근육이 있다.
혹시 글쓰기 포기하면 좀 말려주실 분~?
아시는가들. 어깨에도 근육이 있다. 난 이 사실을 마흔에 운동을 시작하며 처음 알게 되었다. 어깨는 뼈에 거죽만 덮인 것이 아니었다. 어깨 깡패라는 김우빈 님은 골격도 멋지지만 운동을 통해 어깨 근육이 발달이 되어 그리 광활한 어깨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게 우리 PT샘의 주장이다.
나는 광활한 어깨에 기대고 싶지, 갖고 싶은 마음은 일도 없지만 어깨 근육이 약하면 거북목이나 굽은 등이 생긴다는 말에 PT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꾸역꾸역 하기는 한다.
어깨에 붙은 근육을 삼각근이라 하는데 그 모냥이 삼각형이어서 인지 아니면 세 개로 나눠진 근육이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심증은 삼각형 모양에 기울어져 있는데 세 개로 나뉜 것은 확인을 못했지만 요놈 모양이 삼각형임은 내 눈으로 확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창궐했던 그때 그시절, 온라인 피티를 신청해서 집에서 수강을 했었는데 PT샘은 운동 전 후 사진을 온라인 카페에 올리라 했었다. 나름 유교..레이디인 나는 차마 비키니 사진을 올리라는 주문을 뭉개고 또 뭉갰지만, 다들 모범생인지 운동 전후 비교사진을 꼬박꼬박 올려주는 터에 나는 심심할 때마다 사진을 훑곤 했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분이 계셨는데 늘 타이트한 운동복을 풀셋으로 입고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레이디였다. 탄탄한 복근에 늘씬한 하체와 늘 썽난 엉덩이를 보고 왜 난 안 되냐 짜증이 났드랬다. 그분의 사진은 기분이 좋을 땐 운동의지에 불을 질러주는 불쏘시개였으나, 열받을 땐 유전자를 극복하는 노력은 없다는 좌절에 얹어지는 곰 같은 피로였다.
어느 날도 아침부터 여념 없이 사진첩을 들쳐보는데 전날 어깨 프로그램을 한 그녀의 전후 사진을 보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어깨가 뽕이 얹어진 것 마냥 부풀어 있었다. 어깨 근육은 쇄골뼈 끝쪽 윗부분부터 팔로 내려오는 삼각형의 모양을 보여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두 시간의 어깨 운동으로 뽕이 나타나는 게 신기했다.
비키니사진 올리기 미션을 빼면 늘 모범생이었던 나도 당연히 그날도 온라인 프로그램을 완수했다. 그것도 동영상속도를 못 따라가서 장장 3시간을. 그러나 내 어깨는 여전히 수줍게 돌돌 말려있었다. 모냐고. 삼각뽕은 어디 간 걸까.
거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살피다가 알게 되었다. 내 어깨에도 삼각근이 있었다. 닭봉처럼 근육이 세모로 붙어있었고 아령을 드니 순간 그 세모가 드러났다.
작지만 소중한 어깨 근육을 만난 찰나였다. 허나 반가움도 잠시, 세 시간의 운동에서도 감각이 살아나지 않은 걸 보니 얘가 뽕이 되기까지는 내게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좌절감이 한숨으로 토해졌다. 아놔. 이상하다. 어깨가 아픈데. 난 세 시간 동안 관절운동을 한 건가 아님 팔운동을 했나? 징징징징 끝에 내 결론은 아직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수십 년의 시간 동안 그저 가방을 받치는 역할에만 충실했던 녀석을 갑자기 지분대며 깨어나라 솟아올라라 하면 갑자기 벌떡 일어날 수 있겠는가. 몇 달의 시간으론 턱이 없다. 단백질도 멕여 살살 달래가며 혹독한 운동으로 깨워야 얘가 겨우 살아날 거라는 깨달음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 몸에 붙어있으되 제 역할을 못하는 게 어디 어깨 근육 뿐일까.
십수년을 '~를 알려드림. ~를 보고드림'이라며 시작하는 기안보고서만 써댔던 내 글근육. 이녀석이 갑자기 불끈 힘을 내주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겠지. 해서 남들은 한 시간 안에도 후딱후딱 써 내려가는 이 에세이를 세 시간을 쓰고도 고치고 또 고치는 오늘도 녀석이 잘 견뎌내길 바래본다. 그 펜질 끝에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곱게 전달해낼 수 있는 굳센 글근육이가 생기지 않을까. 그 기간 동안 왜 나만 안 되냐 징징은 대더라도 포기하진 않았음 싶다.
여전히 뽕은 없지만 살짝 펴진 어깨를 보니 지난 몇 년의 노력이 느리지만서도 영 효과가 없는 건 아닌 듯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