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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불친절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나란 여자, 근 40여 년을 상체가 마른 몸으로 비만스러운 하체는 숨기고 살아왔다. 운동 따윈 하지 않는다. 옷으로 감출 수 있는데 굳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애 낳고 배가 볼록이 아닌 쑥 나오기 전까지.


물론 미용적인 문제도 있지만 배가 나오면 온갖 건강 수치가 상하게 요동을 친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속상한데 실시간 바뀌는 사이즈에 바지 단추를 간격을 려 다는 것으로 해결이 안 되어 친정엄마와 같은 사이즈를 사야 하는 나를 발견하면 그야말로 현타가 온다.  


할 수 없이 운동을 시작한다. 요가를 해본다. 유연해진다. 살이 안 빠진다. 필라테스. 살이 옹골차진다. 몸무게는 그대로다. 할 수 없이 헬스장으로 향한다. 마지막이다. 이래도 안되면 그냥 옷을 새로 사자.


예전에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나오길 헬스장은 불륜의 시작이라는데. 불륜까진 모르겠고 운동하는 선남선녀들끼리 화기애애한 건 맞는 것 같다. 내 PT선생님은 젊은 여자분. 예의 있는 말투와 태도를 갖추었으나  딱히 내게 관심은 없다. 딱 50분 수업. 사람이 저렇게 칼 같을 수 있나. 어쩌다 개인운동을 나가서 마주쳐도 나를 피하기 십상이다. 에라~치사해서 안 물어본다. 그런데 옆에 젊은 남자 은 다르다.  젊은 여자회원에게 오늘 웬일이냐며 나온 김에 운동을 가르쳐준다고 싹싹하게 말을 건넨다. 내가 그들을 이리 주시한 이유는 절대 부럽거나 아쉬워서가 아니다. 그 친절한 남자 PT선생님이 다른 나이 든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아 이거 잡으시고 이 판 발로 미시면 돼요. 이렇게요? 네네. 약 5초간의 짧은 대화 끝에 남자 샘이 급하게 휙 돌아선다. 아마 선생님의 회원이 아니었나? 그래도 젊은 저 친구들한테 저렇게 친절한데 왜 할머니에게는 저리 불친절 할까? 슬퍼진다. 현 중년, 곧 노년을 맞이할 나로서는 남일 같지가 않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옆 직원에게 썰을 풀어본다. 그녀가 대꾸한다. 나이 들어서 대접을 받으려면 돈을 써야지. 세상에나 더 슬프다. 나이 들어 서럽지 않으려면 돈을 써야 하는 것일까? 왜 남들의 불친절에 서러워질까? 나 혹시 다른 사람의 친절을 받지 못하면 내가 괜찮은 인간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 과 사무실에서 타인의 친절을 가장 많이 향유하는 사람은 단연 과장님이다. 내가 얘기했으면 당장에 면전에 대고 에이 그건 아니지 했을 이들조차 주체가 과장님으로 바뀌면 말이 바뀐다. 웃는 낯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암요암요를 연발한다. 간혹 과장님이 규정을 과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시거나 규정과 다른 얘기를 해도 면전에 대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친절하고도 기분이 상하시지 않게 이야기를 돌리고 돌린다. 결국 앉아 있던 사람들이 우리가 무슨 얘기를 했더라 하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그럼 과장님이 퇴직하시면 직원으로부터 지금과 같은 친절을 누릴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과장님은 퇴직하셨다는 이유로, 더 이상 같은 친절을 누릴 수 없다는 이유로 괜찮은 사람이 아니게 된 건가?


내 결론은 어쩌면 그렇다이다. 내가 나의 평가를 그들의 친절에 두면 그리 된다. 물론 상대를 좋아하거나 존경해서 친절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직급 때문에, 어쩌면 도움이 필요해서, 아니면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기 위해, 또는 습관처럼 친절한 경우도 있다. 너무 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데 이유 모를 친절에 우쭐하고 불친절에 서글퍼지면 곤란하다. 나에 대한 평가를 필요충분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외부조건 칼자루를 쥐어주고 휘두르게 하다니, 그동안 스스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던 걸까?


어쩌면 헬스장 할머니는 심란했던 나와 달리 선생님이 휙 돌아섰을 때 빛나는 내공으로 아무렇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저 양반이  화장실이 급한가라고 여기셨으려나.


나도 그즈음엔 사소한 일에 기분이 널뛰지 않고 평온해질 수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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