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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의 추억

난 없는데?

애들을 등원시켰으면 얼른얼른 집에나 갈 것이지 엄마들은 꼭 어린이집 앞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떤다. 무리 속에 끼지 못할 때 느끼는 소외감과 두려움. 그 무리 중에 어설프게 아는 이가  혼자 있는 나를 아는 척할 때 느껴지는 그녀들의 집단우월감(?)이 싫었다. 보지 마라 보지 마. 어색한 미소를 두르고 시선은 사선 먼 곳에  둔 채 게걸음으로 어린이집 앞을 빠져나오던 나를, 그녀가 불렀다. ㅅ아파트 사시지 않냐며. 태워다 준다고.


낯가림이 심한 나도 편히 느껴질 만큼 처음부터 그녀는 상냥하고 친절했다. 걷기엔 꽤 먼 거리였던 어린이집과 우리 집사이를 둘째아기띠로 가슴팍에 안은  한 손으로 운전하는 모습은 여자 꼬실 때 국룰이라던 한 손 후진 드이빙 보다도 오만배는 멋져서 나는 그만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곧 휴직기간 나의 유일한 동네친구이자 육아동지가 되었다.


그녀는 운전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세 살 두 살 연년생 애들을 키우는 엄마에도 애아빠의 핀잔을 피하고자  밥을 꼬박꼬박 차리되 아이들에겐 맛있고 영양 만점 유기농 설렁탕을 몰래 사 먹이는 현명한 여자였다. 밥 달라는 남편에게 양심이 있으면 이유식을 먹던먹고 들어오던지 하라고 버럭 설전을 했던 나로서는 그녀의 똑똑함에 엄지를 치켜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거 아니냐며 놀려댔지만 남편의 밥을 정성스래 챙기는 그녀와 나와의 차이가 단지 현명함의 차이 만이었을까 궁금했다.


한 번은 그녀가 지인의 이야기를 전해준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여대를 나오고 교원 자격증 있었던 그녀의  지인이 외도를 하는 바람에 양육권도 빼앗기고 이혼을 당했다는 삼류 드라마만큼이나  자극적이고도 흥미로운 얘기였는데 정작 내 생각이 머문 곳은 그녀 덧붙인 말이었다.

애를 마지막 보는 날인데 우리 같으면 따뜻한 밥 한 끼 해서 먹일 건데 걔는 글쎄 식당에서 밥사먹이고 헤어졌다더라.


난 아닌데. 난 맛있는 밥 사 먹일 건데. 개념 없는 엄마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 자체 검열 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으 속으로 읊조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사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에게서 자랐다고 했다. 묻진 않았으나 알 수 있었다.  정성스러운 집밥을 먹고 자란 여자임을.  그런 기억을 가졌으니 늘 남편 밥을 정성스레 차리고 마지막으로 함께할 때는 집밥을 먹어야 하는 걸 테고.


우리 엄마. ㅇ여사. 없는 형늘 직장을 다니 솜씨도 는 삼박자를 갖추셨다. 덕분에 반찬은 늘 김치뿐이라 먹을 만한 게 없어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혼자서 김치볶음밥이나 김을 기름에 튀긴 튀각을 해서 먹은 일이 드물지 않았다. 집에서 먹는 건 그렇다 쳐도 도시락은 좀 신경 써서 싸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도 반찬은 늘 김치와 김, 멸치 같은 거였다. 어느 날은 학교 가는 길에 김을 사가지고 가라기에 그래도 뭐 다른 반찬이라도 들었겠거니 했는데. 밥만 있었다. 덩그러니. 친구들은  반찬통을 놓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난 알고 있었다. ㅇ여사가  반찬통을 잊은 것이 아니라 바뻐서 준비를 제대로 못했으니 점심을 양반김  몇 장에 먹으라는 의도라는 것을. 그러니 내가 그녀 같은 집밥에 대한 아련함 따위가 있겠는가?


그랬군. 그 때문이었군. 나의 외식선호사상. 우리 애들에게 집밥에 대한 기대가 없는 가풍을 물려준 것도. 


칼융은 무의식을 의식화 하지않으면 무의식이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했다. 이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라 부른다고.


내 기억속에 집밥의 따뜻함이나 가족의 사랑이 희미하면 희미한대로 그냥 두어야할까. 운명이라 생각하고?


안 되겠다. 엄마가 내 무의식에 심어둔, 어쩌면 대대로 이어져왔을 <집밥 시러 프로그램>에 더 이상 조종되기를 거부한다. 아들들 기다려라. 너희는 내일부터 집밥의 추억을 갖게 될 거다.


맛은 자신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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