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래도 엄마는 좋은 사람이야! 난 알아.

늦었다. 하필 오늘 늦었담. 우리 둘째 생일날. 재주도 없고 솜씨도 영 꽝인 엄마는 그저 케이크를 들고 빠른 걸음을 걷는다. 다른 건 몰라도 생일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의식 같은 거다. 경건하게 노래를 부르고  소원을 빌고 초를 불어야 한다. 저번엔 노래를 왜 이리 대충 하냐며 큰아이의 꾸지람을 들었다. 그렇다 대충 하면 안 된다.


근데 늦기까지 하다니 혼날 일만 남았다. ㅎ야! ㅈ야! 엄마 케이크 사 왔다. 생일파티하자. 그런데 작은 아이가 없다. 안방에서 불을 끄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굼벵이처럼 꿈틀거리는 저 녀석. 또 뭐냐. 불길함이 엄습한다.


왜 그러고 있어? 몰라 아빠가 뭐라 뭐라 하자나! 아빠가 혼냈어? 몰라 몰라!  


아놔 생일날 애를 울리고 그래. 하튼 아빠로서 기본소양이 안 갖춰져 있는 이기적인 인간. 속으로 욕을 욕을 하며 애를 달래 본다.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이니까. 이쯤이야.


ㅈ야 왜 그래 엄마한테 말해봐. 몰라 몰라 엉엉엉~


오늘 쉽 않다. 십 분을 씨름하다 겨우 식탁으로 애를 불러온다.  초를 꽂고 불을 붙이려는데  케이크칼 뒤 작은 수납공간에 성냥이 들었다. 이거 어떻게 꺼내는 건가.  성질나서 쳐다도 안보는 애아빠를 부르긴 모양이 빠진다. 낑낑대면서  애와의 대화공백을 메워본다. 신경이 온통 성냥에 있으므로 굉장히 성의는 없었다. 인정한다. 그러나 '아빠가 뭐랬는데' 이 질문이 도돌이표가 되어서 다시 10분 전으로 돌아갈 줄은 몰랐다. 우왕~그의 사이렌은 다시 시작됐고 성냥은 여전히 케이크칼에서 나올 줄 몰랐다. 자애로운 엄마는 이십 분에 사라졌다. 에라 모르겠다. 니 혼자 풀어라. 냉장고로 도로 들어가는 케이크를 보며 먹보 큰애는 여태 이빨도 안 닦고 기다렸는데 기가 막힌 다며 방으로 돌아가고, 나도 샤워를 하 가며 자리를 피한다. 러나 요 녀석은 혼자 분을 풀 생각이 없다. 머리를 말리는 데 따라 들어와서 징징징징. 방으로 가면 또 따라와서 징징징징. 징징징. 징징징징. 징징징징,.점점 신경이 곤두선다.급기야..


왜! 도대체 왜 이래! 어쩌라고 이러는 거야!

최소 옆옆집까지는 가 닿았을 쩌렁쩌렁한 복식발성으로 나도 모르게 러버렸다. 이렇게 무식하게 마무리할 거였으면 차라리 앞의 20분을 우아한 척을 말았어야 했는데 결국 나는 생일날 애를 울린 애비보다 더 이상한 이중인격 미였다.


당혹스러운 마음에 일단 안방으로 피신해 본다. 따라 들어온다. 애도 나도 약간 그러들었지만 이유는 다르다. 애는 무서워서. 나는 쪽팔려서.


당황한 나를 구해준 건 눈물자욱이 남은 채로 계속 엉덩이를 들이미는 이 녀석이었다.  안아주었다. 엄마가 미안. 소리 질러서. 아냐 내가 나빴어. 엄마가 나빴지. 소리를 빽 지르고.


아냐, 엄마는 소리는 지르지만 좋은 사람이야. 내가 알아.

 

훅 들어온 멘트에 코끝이 아려왔다. 밖에서 사회생활 하느라  친절한 척,  우아한 척, 배려심 넘치는 척 온갖 척에 지쳐 집에 오자마자 드러눕는 나. 게을러서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 시도 때도 없이 사납게 돌변하는, 나도 보기 싫은 내 모습을 질리게 보는 이 녀석이 그리 말하니 누구의 그럴싸한 한마디 보다 위로가 되었다. 리 아들은 그런 나도 사랑해 주는구나. 내 본모습도 어쩌면 사랑받을만하구나.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어린 아들에게서 배운다.


오늘  생일 별로다. 내일 새로 하자 생일. ㅈ이  케이크도 내일 하고 소원도 내일 빌고 보드게임도 내일 하자~알았지? 오늘은 코 자고 내일 기분 좋게 새로 시작하자~


그렇게  그 녀석 생이 되었다. 아들이  아직 덜 큰 나를 양육한 지 9년째  되는 날.





이전 10화 집밥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