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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기로운 야구생활

# 나만 잘하면 됨

그의 선수반 야구수업이 시작되었다. 금토일 삼일의 두 시간 세 시간씩의 수업. 픽업차량이 없어서 직접 훈련장으로 데려다줘야 하는데 운전을 못하는 나로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특히 금요일 7시 저녁수업에 참석할 때는 정말 답이 없다. 퇴근하자마자 뛰어가서 가방만 던져놓은 채 애 손을 잡고 다시 집을 나선다. 평시라면 택시를 타면 10분 안에 가는 거리지만 오늘은 프라이데이나잇이 아니던가! 택시를 타도 30분은 족히 걸린다. 그래도 전용도로가 있는 버스가 낫겠지 싶었으나 첫 주의 시도는 40분이라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전용도로고 뭐고 그 도로는 전체적으로 꽉 막혀있었다. 두 번째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환승하는 것이었다. 근데 그 시간엔 지하철에도 사람이 많다. 버스를 갈아타니 시간도 비슷하게 오래 걸린다. 지하철로만 가자니 애가 걷는 시간이 너무 길고.. 전기자전거를 타야 하나 생각만 많아진다.


힘들고 어렵게 도착한 야구장에서 애가 야구라도 멋있게 하는 모습을 시연하면 나도 피곤하지 않을 것 같은데, 캐치볼 연습 때는 공이 자꾸 글러브에 안착하지 못하고 데구루루 구르는가 하면 누가 봐도 선생님이 초짜인 얘에게만 공을 방망이에 대주는 모양새인데도 공이 힘차게 날아오르지 못하는 것을 보 곰을 등에 업은 것마 일주일치 피로가 몰려온다.


취미반 수업이지만 매주 한 번씩 근 삼 년을 보냈는데 겨우 저러고 있었다니. 이제 와서 이걸 하는 게 맞나. 정말 야구용품점 사장님 말처럼 학원선생님의 '소질 있어요'라는 말에 속아 넘어간 호구가 된 것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친구와의 통화에서 이런 얘기들을 쏟아내 그녀가 깔깔대며 말한다. 보지 말라고. 애 보내고 옆에 앉아 있지 말고 어디 가서 커피나 홀짝이라고. 애가 재밌다는데 하고 싶다는데 뭐. 그냥 시켜고 안 봐야 돼. 우리 성격상.


백번 옳다. 본디 다른 일에도 확신이나 신념 따윈 없는 나란 사람은 애들일이라면 사소한 단서에도 개업가게 풍선인형처럼 미친 듯이 흔들리로 차라리 눈감고 지내는 것이 녀석과 나의 안녕을 위해 맞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집에 버스 타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묻는다. 재밌었어? 오늘도? 응! 너무 재밌어! 뭐가 재밌어? 훈련도 재밌고 오늘은 시합도 해서 너무너무 재밌었어. 훈련은 힘들지 않아? 힘들지! 그래도 야구를 잘하고 싶으니깐 그것도 재밌어. 오늘 형아들이 벌칙 받는 거 투명의자를 하는데 나는 벌칙 안 받아도 되는데 그냥 같이 했어. 그러면 야구 잘하게 될 거 같아서.


아! 못해도 괜찮구나 너는. 야구가 재미있어서 못하는 너를 견딜 수 있구나!


뭔가 못하는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새로운  걸 시작조차 못하고 시도해도 금방 그만두는 일이 허다한데 내 아이들은 다르구나. 내가 낳은 녀석이라 내 미니미인줄만 알았지 이리 훌륭한 어린이인 줄 미처 몰라봤다.


그래 엄마가 널 믿어볼게. 재미있는 일은 과정이 힘들어도 견뎌내는 너를. 좀 못하는 순간에도 자기를 혐오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너를.  그래도 엄마가 본전 생각나 울컥할 땐 잠시 커피를 홀짝이고 오마.


저기.. 그래도 공이 오지도 않는 저어~기  외야에서 공수 교대가 되는지도 모르고 멀뚱이 서있는 건 좀 아니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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