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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소하지만 특별한 재능

우리 둘째가 타인에게 그의 본성을 드러낸 것은 약 3살 무렵이었다. 아마 명절이었을 것이다. 고모네 식구와 우리 식구가 어머님 댁에 모여 있었던 것을 보니. 그 당시 휴직 중이어서 5살 3살 남아를 홀로 키우고 있었다. 남편있으되 없는 것과 같은 상황. 오히려 없으면 내 체념하고 살 것인데  하루종일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다 실망하고 싸우고를 지겹게 반복하며 외로운 육아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명절은 오히려 반가웠다. 주방따윈 하나도 안 힘들다. 육아에 비하면. 가끔 보는 예쁜 손주, 조카를 남들이 봐주면 나는 설거지를 하며 주방에 피신해 있으면 된다. 그날도 그런 명절이었다. 기쁘디 기쁜 날.   


사람이 많아서 신나서 그랬? TV테이블에 놓여있던 탁상시계를 눈여겨보던  둘째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재빠르게 기어가서 시계를 집어 들고는 냅다 마루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재물손괴에 민감하신 우리 아버님 또한 누가 뭐라 할  틈도 없이 소리를 빽 지르셨다.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세 살 버릇여든 간다고 큰일 날 놈이라고. 우리 집안에 저런 애가 없는데 대체 누굴 닮은 거냐.


여하튼 그 사건으로 우리 둘째는 시댁에서 말썽쟁이로 찍혀 버렸다. 내보기엔 선비 같은 첫째가 오히려 드문 경우인 것 같은데 그와 비교되어 어쩌면 평범한 것 같은 둘째가 세상 문제아가 된 것이다. 시댁은 차치하더라도 시댁의 영향으로 남편도 둘째를 아픈 손가락처럼 여기니 엄마인 나마저  두둔도 했다가 뜯어고치려 하는 오락가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우리 둘째가 가족의 관심과 칭찬을 한 몸에 받는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큐브였다.  시작은 첫째였다. 친구의 영향으로 큐브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해 달라기에 딱 1년을 했다. 알록달록한 것이 예쁘기는 하다만 저런 것은 천재들이나 푸는 것이지 평범한 우리 아이들이 풀 수 있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첫째가 배워서 맞춰오기에 역시 저 녀석은 못하는 게 없구나 내심 흐뭇해했다.  그리고 모든 동생들이 그렇듯 둘째도 형아가 하는 큐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주고 머리 감고 나면 하교를 한다던 1학년시절, 둘째는 피아노를 제외하곤 유일하게 다닌 영어학원을 두 달 만에 때려치우고는 널널하다 못 해 넘치는 시간을 주체 못해 형아한테 배운 큐브에 매진했더랬다. 2학년 때는 큐브 방과 후 수업을 시작하고 어린이큐브대회에 신청해 달란다. 첫째가 작년 대회에 출전하여 다 같이 응원을 간 적이 있었기에 그냥 주말 또 하루 때워보자 하는 마음으로 신청했다.


오전에 큰아이의 경기가 끝났다. 중상정도의 성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축하해 줬다. 소풍 온 것처럼 가벼운 점심을 먹고 오후 둘째 아이의 차례가 되었다. 이녀석이 긴장을 한다. 우리는 무념무상. 그런데 갑자기 아이비큐브/2X2X2큐브/3X3X3큐브 세 종목에서 본선 진출을 하는 기염을 토해버렸다. 그것도 상위권 성적으로.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활약에  우리 세 식구도 완전 흥분상태가 되었다. 본선을 기다리는 아이는 쉼 없이 큐브를 돌려댔고 큰아이는 신나서 자기보다 잘하는 동생에게 코치를 하고, 엄마 아빠는 흥분 상태에서 사진을 찍어서 가족들에게 돌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마 그때 가랑비라도 왔다면 상기된 우리 가족 머리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을 것이다. 긴장한 둘째는 아이비 본선에서 1등 기록을 하고도 기록패드를 잘못 눌러 우수상에 머물렀지만 2X2X2에서는 2등을 3X3X3 3등을 했다.


우리는 벌게진 얼굴로 신나서 집으로 왔다. 둘째는 그날부로 우리집 큐브 천재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고녀석은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재주와 장점이 있는 아이였다. 2학년 장기대회 때는 풍선으로 강아지 만들기를 해서 그반 학생들 모두에게 강아지를 나누어 준 다정한 어린이였다. 물론 너튜브를 혼자 보고 풍선아트를 연구하면서 성공할 때까지 내게 부린 짜증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그 와중에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멋진 모습이 있었다. 한때는 마술에 빠져서 퇴근하고 피곤에 절은 엄마 아빠를 붙잡고 하루 종일 연습한 것을 그렇듯하게 시연해내기도 했다. 손재주가 있는 아이, 끈기가 있는 아이였다.


다중지능 이론이라든지, 아이들의 자질과 재능을 키워 줘야 한다든지,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든지 하는 말들을 모르지는 않지만 둘째는 몸소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 다 다르다는 것을. 공부로 비교하면서 녀석들은 손쉽게 순위 매겨서는 안 됨을,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들 각각의 고유함을 지켜주고 키워주는 것이 육아임을.


오늘 둘째가 참가하는 세 번째 큐브 대회이다. 두 번째 대회 3X3X3 종목 1위를 올해도 지킬 수 있을지. 우리 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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