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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안에 내 맘 있다.

#잘 들어다 보기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하는 날이었다.  둘째는 다섯 살이었고 유치원도 잘 다니기 시작했다. 복직을 더 미룰 이유는 없었다. 아이들이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고 출발하면 9시 출근시간을 맞출 수가 없기에 근처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도와주러 오시기로 했다.


복직 후 첫 출근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내가 일을 할 수 있을까? 기억이나 날까? 복잡한 마음으로, 곤히 자는 아이들은 어머님께 맡긴 채 버스를 탔다. 버스가 사무실에 다다를 무렵 전화가 왔다.

네 어머니
응응 전화 좀 받아봐
우왕~~~~~

둘째였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엄마 어디야 어디 갔어? 우왕~~

유치원도 신나게 다니는 녀석이 자다 일어나서 내가 없다고 운다고? 예상밖의 일에 당황했다.

빨리 와 집에.
지금 어떻게 가. 엄마 지금 버스 타고 멀리 왔어. 회사 근처야.
택시 타고 돌아오면 되잖아.
지금 못가 엄마 회사 가야지.

실랑이는 사무실 앞까지 계속되었다. 통화소리를 가장 작게 설정했음에도 엉엉 우는 소리가 수화기 밖으로 쩌렁쩌렁 새어 나왔다. 사무실에 도착했으나 들어가지도 전화를 끊지도 못하고 서서 안절부절못하던 순간 결국 우리 아들은 참지 못하고 분노를 폭발했다.

당.장.돌.아.와~~~~~~~~~~

스타카토로 딱딱 끊어진 강렬한 강세와 그에 대비되는 마지막 음절의 어마어마한 길이,  찢어질 듯한 볼륨이 수화기 밖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출근하시던 과장님이 그 소릴 들으시더니,  기가 차신지 허허 웃으셨다. 내 얼굴이 벌게졌다.


비슷한 사건이 며칠 지속되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던 시어머니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눈치가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30분 늦게 출근하고 30분 늦게 근하는 유연근무를 신청했다. 애들 유치원에 보내고 출근해야 이놈의 '당장 돌아와'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연근무하는 직원이 없지 않았지만 흔치도 않았다. 눈치 보는 걸로 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다. 그러나 엄마는 용감하다. 애가 저리 우는데 찍혀도 욕먹어도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육아'관련된 일들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역린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비교적 형성흔쾌허락(?)을 받다.




다른 과 젊은 직원 하나가 유연근무를 신청했다는 소문이 났다. 사유인즉슨 '영어공부'였다. 수군수군 난리가 났다. 애도 없는데 무슨 유연근무냐는 거였다. 유연근무 사유가 영어공부가 말이 되냐며. 시시 때때로 오는 메일이나 업무를 즉시 처리해야 하는 서무가 저런 가당치 않은 이유로 유연근무를 쓰면 어쩌냐는 거였다.


얘기를 듣는 내내 자동차 장식인형처럼 영혼 없이 끄덕였다. 나는 고 녀석 똑똑타 생각 중이었다. 아니 안 그래? 나의 영혼 없음을 눈치챈 직원이 내 동조를 구한다.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추임새를 넣지만 사실 난 괜찮다. 나는 유연근무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까. 만약 그 젊은이가 근무시간을 2시간 줄여주는 육아시간을 쓰고 있다면 내 태도가 달랐을까? 당연하다. 내가 못 하는 걸 누군가 누리면 당연히 '질투'가 난다. 난 못해봤는데 넌 왜 해? 난 하고 싶지만 참고 있거든. 너도 참아야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 때,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할 때, 내게도 있는데 펼치지 못할 때 질투가 올라다. 내 마음과 감정이 있는 곳, 아쉬움이 있는 곳에 질투가 생겼다. 결국 질투가 생긴 지점이 내 마음이 머문 곳인 듯 다.


멋진 글을 보면 질투가 올라왔다. 읽다가 초점이 흐려졌다. 노안도 아닌데 이게 뭔 일이야.

시샘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정말 어른스럽지만 난 안되겠다.  아무리 누르고 눌러도 스멀스멀  감정이 기어올라왔고 결국은 어디선가는 온천수처럼 퐁퐁 솟아오른다. 에이 도닦기는 글렀다.

질투를 안 보고 눈감는 것으로도 내려놓을 수 있지만, 해보는 것으로 선택하여 해결할 수 있다. 질투 나는 것을 안 보려는 시도는 글쓰기에 미련이 없어질 때까지, 어쩌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하지만 행동해서 원하는 곳에 이르면 몇 년 후 혹은 몇십 년 후엔 더 이상 '글쓰기질투'는 완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또 다른 곳을 질투하며 앞으로 나아할 궁리를 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질투 나면 그냥 해보기로 한다. 겪어보고 이게 되는 일인가 아닌가 알아보기로 한다. 해보고 안되면 나는 이게 안되는 갑다하고 되는 사람을 보고 순수하게 경탄하고 싶다. 혹시 되면,.. 이게 웬 떡인가 하고 낼름 향유하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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