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이호테우 해수욕장 해변가를 맨발로 걷는다.

by 수수 Sep 16. 2023

    나는 오늘도 이호테우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는다.

 2018년 폐암 수술이 기회가 되어 매일 하루에 걷는 시간을 1시간 이상 갖는다. 올해 2023년 8월은 수술 후 5년이 되는 때다. 나는 5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부나, 뜨거운 햇살이 있거나 거의 매일 걸었다. 운동화 뒷굽이 다 닳아서 버린 것이 몇 켤레다.

 요즘 외도로 이사를 온 후로는 이호테우해수욕장 해변을 맨발로 걷는다.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기 시작한 것은 함덕해수욕장에서다. 함덕에서 살 때, 8월 휴가철 물놀이하는 사람들처럼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싶었다. 한 번 바닷물 속에서 맨발로 걷고 나니 그 감각을 자주 맛보고 싶어졌다. 이호테우해수욕장은 함덕해수욕장보다 걸을 수 있는 거리가 길다. 왕복으로 3번을 왔다 갔다 했더니 40분 정도 걸렸다.

 이호테우해수욕장까지는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지만, 요즘은 퇴근 후에 수영을 배우고 바로 운전하여 해수욕장으로 온다. 바닷물이 닿지 않는 모래사장 어느 한쪽에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놓고 가벼운 맨발로 모래를 밟는다. 바닷물이 찰랑찰랑하는 해변을 따라 젖은 모래 위를 걷는다. 촉촉한 모래가 발바닥에 닿고 발가락 사이에 들어간다. 무거운 내 몸이 누르는 힘으로 발은 모래를 누르고 앞으로 나아간다. 내 발에 의해 눌리는 모래는 크게 저항하지 않고 부드럽게 내 발을 감싼다. 부드러운 모래들이 발바닥 모든 부분의 신경을 자극한다. 발가락 하나하나의 근육이 건드려진다.

    나는 걸을 때마다 두 개의 커다란 등대를  본다. 등대는 빨간색과 흰색의 말 모양 등대다. 두 개의 등대를 보면 아들이 돌보고 있는 두 마리의 강아지가 떠오른다. 사랑스러운 강아지처럼 등대도 사랑스럽다. 걷고 난 후 모래가 묻은 발을 털어낸다. 처음에는 신고 갔던 양말을 이용했다. 젖은 모래가 조금  마르도록 걷기 마무리 단계에서는 마른 모래를 밟는다. 그러면 젖은 기운이 사라지고 발바닥에는 마른 모래가 붙어 있다. 모래사장에서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아 발바닥에 묻은 모래를 양말로 털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정도다. 요즘은 해수욕장 화장실 뒤쪽에 있는 수돗물로 발을 씻는다. 작은 발수건도 챙긴다.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는 전문가가 되고 있다.

    바닷물이 철퍼덕거리며 내 발을 적실 때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이 행복하다. 나처럼 걷는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간다. 6.25 전쟁 때 피난 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된다. 나는 6.25 전쟁을 겪지는 못했지만, 영상자료를 통해 본 그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폐암 수술 후 작년까지 4년 정도는 산과 들, 나무가 많은 곳을 걸었다. 2023년 1월, 제주도로 온 이후로도 사려니숲, 절물자연휴양림, 한라수목원, 오름을 찾아 걸었다. 외도로 이사를 온 후로는 걷는 장소가 바닷가가 주된 장소다.

   바다가 나에게 주는 생각은 단순하다. 넓다. 파랗다. 아름답다. 시원하다. 잔잔하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이룬 수평선. 밤에는 수평선 끝에 보이는 별처럼 보이는 고깃배들의 조명들. 작고 작은 삶의 찌거기들이 파도에 씻겨지는 느낌.


  바다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나도 바다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도로 이사왔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