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전략

착한 아이가 된 5살

by 이도연 꽃노을





어떤 아이로 자신을 소개하고 싶은가요?
" 전 착하고 말 잘 드는 아이였어요. "






어떤 아이로 자신을 기억하나요?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심리 상담 선생님께서 오늘은 무엇을 물어보실지 두려웠다. 절대로 꺼내 보고 싶지 않아서 나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무의식 수면 밑으로 깊이 숨겨둔 내 어린 시절 이야기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었으니까...




햇살에 창문이 드리워서 상담실 내부는 참 따뜻했다. 그리고 밝았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선생님과 나는 어색함 웃음을 짓는다.


" 오늘은 어떤 아이로 자신을 기억하는지 말해 주세요."


나는 잠시 멈칫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 나는 어떤 아이였지? '

.

.

.

.

한 참을 생각하다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 착한아이요. "


" 착한 아이가 어떤 아이 같은가요? "


" 어른들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잘하고 말썽 안 피우는 아이요. "

" 항상 할머니나 고모가 말했어요. 말 잘 들으면 착하다고. 전 그 소리가 듣기 좋았습니다. "


" 아.. 그랬군요. "

" 그럼,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고 어른들 말을 듣지 않으면 나쁜 아이들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


"......"

" 아니요. 어리니까 그럴 수 있죠. "


나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분명 말 잘 듣고 말썽 안 부리는 게 착한 아이였는데... 내가 어른이 되어 착한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다시 생각해 보니 말 잘 듣고 말썽 안 피우는 아이도, 말썽을 피우거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도 착한 아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직 자라나는 단계이고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기에.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린 시절은 실수도 말썽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말썽을 피우면 안 된다던지 말을 잘 들으라고 말한 사람은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어린 나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할머니댁에서 몇 개월 살다가 나는 고모집으로 가서 살게 됐다. 5살에겐 2층짜리 집에서 사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했다. 고모는 할머니보다 젊었기에 모든 게 더 신식이었다. 이미 여러 집을 옮겨 다니며 산 터라 여기서 착하게 굴지 않으면 다른 집으로 가야 하거나 혼자 버려 질지도 못한다는 무서운 생각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눈치를 준 것도 아닌데 5살이었던 나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 아닌 전략을 세웠던 것 같다. 반찬이 매워도 웃으며 먹었다. 그런 날 보며 아무거나 잘 먹는 착한 아이라고 불러 주었다. 그다음 날에도 같은 반찬을 더 많이 담아서 내 앞에 놔주시던 고모가 고마워서 난 매워도 물 한잔도 요구하지 않고 그 반찬을 먹었다. 지금도 고모는 나를 만나면 오이 도라지 무침을 잘 먹는 아이였다고 기억하고 계신다.


5살짜리 내 아들(가명: 호림이)을 위해 김치를 담그다가도 불현듯 그때 내가 먹었던 반찬들이 생각났다. 호림이가 반찬을 투정 부리거나 칭얼되면 " 이게 뭐가 맵니? 예전에는 이유식이나 유아식도 없었다."라고 어린 아들을 잡고 이야기하곤 했지만 아이들 재우고 밤이 되면 호림이게 미안함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이유가 이 것인가 싶었다. 밤새 지금의 호림이와 같은 나이였던 내 어렸을 시절 생각이 나서 슬프고 우울했다. 마치 그때도 다시 돌아간 듯한 감정들이 뒤섞여서 혼란스러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도연씨가 어렸을 때 도연 씨가 생각한 착한 일을 했을 때 그때를 생각해 봅시다.. " 그때 감정과 기분은 어땠나요? " 그 질문에 나는 " 기분이 좋았다고 뿌듯했다고 대답했다." 그땐 정말 그랬다. 내가 매운 것을 먹으면 반찬투정 하지 않고 뭐든 잘 먹는 착한 아이라는 칭찬이 내게 내려졌으니까. 그래도 상담 선생님은 그게 어떻게 기분이 좋은 것이냐 왜 뿌듯한 것이냐고 반문하지 않으셨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내가 느꼈던 그 시절 감정을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다.


나는 상담사 선생님께 아들과 나를 비교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나는 어렸을 때 매운 것도 잘 먹고 가시 있는 생선도 척척 발라 먹었는데 호림이는 반찬을 따라 해주는 호사를 누리게 해 줘도 입도 짧고 편식을 한다고 토로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예민했다는 둥 입맛이 까다롭다는 둥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 나의 불평과 육아 고민이 끝없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한 풀이 처럼 했던 내 말을 다 들은 상담 선생님께서는 " 아이와 엄마는 다른 인격체입니다. 엄마가 낳았지만 아들은 성격이나 기질 그리고 취향이 엄마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나 살아가는 환경도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 내편을 들어줄 것 같았던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 게 섭섭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별말을 하지 않았다. 심리 치료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 환경이나 그때와 상황이 당연히 다르지... 하지만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나 규칙들은 같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내내 나는 생각했다. ' 어린 시절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 우울증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가? 치료에는 도움이 되는 것은 맞는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과 나의 아이와 관계가 개선이 되는데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면서 더 답답해졌다. 고이 접어 아주 깊숙이 처박아 놓은 어린 시절 이야기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데 왜 자꾸 기억을 해보고 감정을 물어보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히 부모를 볼 수 없고 친지들에게 맡겨서 눈치를 보면서 사는데 슬프고 외롭고... 행복하지 않지.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때 그 감정들에게 감정의 이름을 하나씩 붙여 주고 있었다.

맞다. 난 외롭고 슬프고 행복하지 않아서 힘들었다. 나는 내 감정도 설명하지 못할 만큼 내 감정을 숨기거나 회피하려고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5살 어린아이가 웃고 참았던 것은 착하다는 칭찬을 듣기 위함이었고 남의 집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린아이의 생존 본능 같은 것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 감정도 제대로 나는 모를 만큼 가면을 쓰고 살았던 것 같았다. 또다시 마주한 어린 기억에서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내가 했던 행동과 말들이 또다시 버리지 지거나 더부살이를 하고 싶지 않아서 내 나름대로 세운 살아남는 계획 같아서 뜨거운 눈물이 눈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실제 내가 5살이었을 때는 분명 고모가 있어서 행복했고 그 착하다는 말하나에 뿌듯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그때 그 5살 아이에게는 너무 버거운 일 같아 보였다.




타인의 칭찬을 받기 위해 착한 아이가 되었던 내 어린 시절을 위로하며
난 나의 아이를 착한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아 지기 시작했다.









이미지출처: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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