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맞고 지금은 아니다
엄마 아빠가 없는 낮엔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요?
" 엄마 아빠는 바쁘셨나요? "
" 네. 아빠는 늦깎이 대학생이었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대신해서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래서 전 늘 혼자였습니다."
" 혼자 집에 있을 때 어떨게 시간을 보냈는지 알려 줄 수 있을까요? "
네 번째 수업쯤 되니 이제 상담 선생님의 물어보는 시점으로 빨리 기억을 돌아갈 수 있었다. 마치 과거로 타이머신을 타고 가는 것 같았다. 물론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첫 번째 두 번째만큼 거부감이 들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6살 때부터 7살까지 유치원을 2년 동안 다녔다. 지금은 아이들이 5세부터 7세까지 유치원을 다니지만 80년대에는 7살 때 1년만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오후 1:30분쯤 유치원이 끝나면 친구들은 집에 돌아갔고 나는 선생님들과 유치원에 남아 있어야 했다. 가끔 부모님이 빵집을 하던 친구가 나를 빵집으로 초대할 때면 유치원 근처에 있는 빵집에서 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선생님들이 퇴근하시는 7시까지 나도 유치원에서 혼자 놀아야 했다. 다음날 수업할 자료들을 만드는 선생님을 돕기도 했고 그마저 할 일이 없을 때는 나는 코끼리 모양의 미끄럼틀을 탔다. 미끄럼틀을 올라서서 창밖을 보면 차들이 다니는 게 보였다. 창문옆에 놓여 있던 미끄럼틀은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던 장소였다. 계속 타도 엄마가 올 저녁시간은 유치원 생에게는 너무 더디게만 왔다. 선생님들께서 간식을 챙겨주시면 왠지 모를 어색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배부르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어린 나이에도 선생님들께 짐이 되는 게 싫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88년도에는 초등학생이 많아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서 하루에 2번 수업을 했었다. 오후반이 되는 달에는 벽에 달린 시계를 보고 있다가 혼자 시간에 맞춰 아이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학교로 등교를 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집에는 늘 불이 꺼져 있었다. 길게 늘어진 전선 끝에 달린 조그만 메추리알 모양의 스위치를 켜면 형광등이 켜졌다. 아빠가 키가 작은 나를 위해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난 늘 연탄불에 온 신경이 다가 있었다. 연탄 불은 한번 꺼지면 춥기도 했고 연탄불이 꺼지면 뜨거운 물을 데우던 솥단지의 물도 차갑게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혼자 뜨거운 솥을 내리고 연탄불을 확인했고 연탄이 다 타들어 갈 때쯤에는 검은 연탄으로 갈았다. 엄마 아빠가 시켜서 한 건 아니었지만 엄마 아빠가 저녁에 돌아오시면 모두가 따듯해진 방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게 그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난 어느새 초등학교 1-2학년때 나는 집안의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연탄불을 가는 일부터 설거지 그리고 빨래까지. 완벽하지는 않았겠지만 나도 힘든 엄마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 혼자 있어서 외롭지는 않았나요? "
" 당연히 혼자 있어야 하는 줄만 알았어요. 일나 가는 엄마에게 울면서 가지 말라고 해도 엄마는 돈을 벌러 나가야 우리 가족이 먹고살 수 있다고 이야기했거든요."
엄마가 된 나는 초등학생 아들이 하교하면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다. 학교 갔다 오면 숙제를 먼저 하고 노는 거라고 말하는 나와 조금만 있다가를 연신 외치는 아들과의 신경전이다. 결국 아들은 밤늦게 잠에 들기 전에 못 이겨서 숙제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내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1-2학년때 나의 모습을. 가난과 여러 가정 형편으로 일찍 철에 들어야 했던 거지만 손하나 까딱 하지 않고 과제를 미루는 아들을 보면 밉다. 심지어 오늘 학교에 가져갔던 물병을 씻고 있으면 괜스레 화딱지가 난다. 그럼 그 짜증은 무의식 중에 아들한테 향하고 아무 걱정 없이 평온하게 아이패드 게임을 하고 있는 아들이 질투가 났다. 처음엔 그 감정이 질투인지도 몰랐다. 내 내면의 아이가 내 아들한테 질투를 하고 있었다. ‘난 저 나이 때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살았는데 왜 우리 아들은 자기가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인지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난 심리상담 2달쯤 만에 알게 되었다. 단순 육아가 힘들거나 아이가 별나서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는 게 아닌 나의 내면의 어린 자아가 아들은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나도 엄마나 아빠가 집에 계셨다면 나도 평범한 아이답게 지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8살 아이가 뭘 안다고 연탄을 갈고 뜨거운 솥단지를 위험하게 옮겨가며 설거지 빨래를 했는지… 그 시절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어른들의 보살핌 없이 철이 뜸을 강요받은 것 같은 느낌에 썩소가 지어졌다. 그때 그 시절에 그대로 두고 온 나의 내면 아이가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철이 든다는 것은 어린 자아의 욕구가
현실의 결핍에 자기를 감추고 다 큰 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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