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엄마 아빠의 싸움
기약 없는 가난은 전쟁 같은 엄마 아빠의 싸움이 되었다
어린 나는 그 싸움이 다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두 달쯤 됐을 때 선생님은 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 아빠 사이를 물어보셨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우리 엄마 아빠가 나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적당히 이야기를 편집하고 말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세세하게 말을 해야 할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말을 잘 못하고 있자 심리 상담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 엄마가 돈을 벌로 아빠가 대학생이었을 때 가족은 행복했나요? "
" 아니요... "
" 그때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어린 도연 씨가 본 엄마 아빠의 사이는 어때 던 것 같아요? "
계속되는 실패와 비난들
조그만 단칸방에 장롱을 가벽 삼아 그 뒤편 작은 공간에서 대학을 가려고 공부하던 아빠는 2번이나 서울대에 떨어졌다. 다른 대학교를 충분히 갈 실력이었지만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부부에게는 서울대만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다 세 번째 도전에 아빠는 서울대에서 서울 시립대를 목표로 공부를 하시게 됐다. 아빠는 그냥 가족들을 위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엄마는 대학을 꼭 가야 한다고 아빠를 설득했다. 아빠가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만이 우리 가족 모두가 살길이라고 했다.
반복되는 실패와 여자 혼자 사회생활을 해서 입시생 한 명 초등학생 한 명을 키우기란 내가 봐도 버거운 일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미안해하며 자책하며 편치 않는 장학금을 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마음을 다 잡고 공부를 했었던 것 같다. 이런 생활이 초 2학년때까지 이어지자 아빠도 엄마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점점 가난의 틈 속으로 서로의 원망이 오고 가더니 엄마 아빠의 대화는 큰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일들이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말 몇 마디로 시작한 비난이 집안 세간살이를 던지게 되는 무서운 싸움까지 번지게 되었고. 난 그때마다 귀를 막고 얼른 이 전쟁 같은 싸움이 잦아들기를 울면서 기다렸다. 나는 그래서 지금도 가장 무서운 게 '돈'이라고 '가난'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나 때문이야
초2학년인 나는 엄마 아빠의 싸움이 다 끝난 새벽이 돼서야 겨우 잠들게 되고 잠이 들다가도 조금만 큰 소리가 나면 깨는 심리적 불안감을 많이 느꼈다. 조그만 아이 머릿속에는 내가 더 잘하면 엄마 아빠가 안 싸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다음부터 나는 반에서 반장을 도맡아 했고 늘 시험도 백점 맞아 오는 모범생이 됐다. 그렇지만 우리 집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하교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이 되는 게 두려웠다. ' 오늘은 큰 소리 나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을까? '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던 날 엄마 아빠는 몸싸움까지 하게 되었고 난 그것을 내 눈으로 목격한 이후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종종 그날에 본 것들을 똑같이 꿈으로 꾼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꿈은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동네에서 놀거나 등굣길에 아줌마들이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 어제 싸운 집이 저 집이야." "허구언날 싸우니 동네 시끄럽구먼." 난 이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를 잘했다. 어린 나이에도 자존심과 오기가 발동했던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학교에서 가서는 마치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우리 집일을 알면 안 된다는 듯 밝게 행동했고 난 모든 선생님이 칭찬하는 모범생 중에 모범생이었다. 그때는 기뻤다. 철도 들고 모범적이고 착하고 예의바르다는 이야기를 듣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또 아무도 우리 집에서 일어고 있는 일들은 모를 거라는 생각에 우안이 되기도 했다.
그 시절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는 학기 초에는 난 늘 혼자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했다. 엄마 아빠 나이 직업 그리고 집에 소유하는 가전제품들에 동그라미를 치는 란이 있었다. 나는 우리 집이 창피해서 없던 비디오에도 동그라미를 치고 엄마 아빠 나이를 조금씩 부풀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치 내가 엄마인 양 사인을 해서 낸 적도 여러 번 있다. 바쁜 엄마와 아빠는 가정환경조사서까지 챙길 여유도 없었지만 나는 우리 집 사정을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묻어 두어야 하는 비밀처럼...
엄마 아빠를 웃게 할 편지와 그림
초등학생 선생님이셨던 큰 이모가 웬일인지 우리 집에 왔다. 이모는 비싼 바나나 한 펀치를 사들고 우리 집에 오셨다. 지금은 바나나가 저렴한 과일이지만 그때 내게 바나나는 산타할아버지나 생일에나 받을 수 있는 선물이었다. 기분 좋게 바나나를 하나 까서 먹으려다가 난 몰라도 될 단어를 들었다. " 애도 있는데 이혼을 어떻게 한다는 거니? 처음부터 맞는 부부가 어디 있다니." 이모는 아빠와 엄마를 앉혀 놓고 그런 말들을 하고 나한테 말했다. " 엄마 아빠 이렇게 자주 싸우시니? 싸우면 네가 말려. 엄마 아빠 이혼하면 이제 너랑 못 사는 거야." 하셨다. 어렸기에 이혼이라는 말보다 나랑 같이 못 살지도 모른다는 말에 난 잔뜩 긴장하고 불안해졌다. 그래서 난 더 집안일을 열심히 하고 예의 있고 더 착해지기 위해 엄마 아빠 눈치를 밥먹듯이 봤다. 어떻게 하면 아빠가 웃을까? 어떻게 하면 엄마가 더 힘들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했다. 2학년이었던 내게는 편지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 선물하는 방법밖에 나지 않았다. 내가 그림을 그리거나 편지를 써서 엄마나 아빠에게 주면 그때만큼은 아빠와 엄마는 웃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엄마 아빠의 기억 속에는 내가 어렸을 적에 편지 쓰기를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고만 기억하고 계신다.
엄마 아빠의 부부 싸움은 마치 전쟁에서 아군끼리 총질하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았다.
부부가 살다 보면 큰소리도 날 수 있고 의견 충돌이 나기 마련이지만 남편과 나는 소리 내어 싸움을 하지 않는다. 특히 아이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게 한다. 어렸을 적 엄마 아빠의 싸움은 마치 전쟁터에서 서로 아군을 쏘아 죽이는 것처럼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 어린아이에게만큼은 우주 같은 엄마 아빠가 평온하다는 안전 감을 주고 싶었다. 우리는 아이가 없을 때 이야기 하거나 밖에 나가서 대화를 한다. 급하면 카톡으로 싸운다. 하지만 카톡으로는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다. 내용만 있을 뿐 감정은 전달되지 않기에 큰 싸움으로 변질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17년 정도 결혼 생활을 하니 그렇게 싸울 일도 없다. 더 이상 그렇게 가난하지도 그렇게 외롭지도 않으니까. 다만 오늘날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은 트라우마처럼 남아버린 엄마 아빠의 싸우장면이다. 서로를 비난하며 폭력으로 얼룩진 부모의 모습은 내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아이 앞에서 싸우지 마세요
아무 잘 못 없는 아이는 부보의 싸움이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