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억 4살 더부살이

어린 시절의 기억 끄집어내기

by 이도연 꽃노을


여러분은 몇 살 때부터 기억이 나시나요?
우리 아이는 몇 살 때부터 기억할까요?


집순이인 나는 아이를 등교시키고 화장을 하느라 바쁘다. 옷장에 옷이 가득했지만 정작 입을만한 옷은 없다. 청바지에 반팔 아이보리색 블라우스를 입고 집을 나섰다. 워낙 집순이이기도 하지만 코로나가 3년 정도 지속되다 보니 정말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탔다. 원 플러스 원처럼 늘 아이와 어디를 가던 동행을 했던 내가 혼자 밖을 나서니 어색했지만 곧 나는 평안해졌다.




저번주에 미리 예약을 해두었던 심리상담 센터에 도착했다. 큰 안마의자와 쭉 이어진 사각형 의자들이 눈에 띄었고 책장에는 상담사 선생님의 이력이나 상패들이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10시가 되었고 안내하시는 실장님께서 나를 복도 제일 끝방으로 안내했다.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는 밝은 방에 상담할 책상에 온화한 미소로 나를 맞아 준 것은 중년의 여성 상담사 선생님이셨다.


" 안녕하세요. 저희 상담센터를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오시긴 안 힘드셨어요? "

" 네. 운전을 못해서 대중교통 타고 왔습니다. "

" 오래 걸리시는 않으셨어요?

" 한 30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 심리상담을 전에도 받아 보신 적이 있나요? "

" 네 아이가 5살 때 2~3개월 정도 있습니다. "

" 그때는 어땠었나요? "

" 그냥 2~3개월 정도 상담하니 상담사 선생님이 종결하셨어요. 전 별로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스 브레이킹의 목적으로 몇 마디 말이 오가게 되었고 본격 적으로 상담이 시작되었다. 별로 우울함을 못 느꼈는데 우울증 지수가 높게 나왔고 의사 선생님께서 심리 상담을 병행할 것을 권유하셨다고 나는 말했다.

그럴 수 있다면서 침착한 목소리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기억이 나는 것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한동안 망설였다가 4살 정도부터 기억이 난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어릴 적이 야기는 내가 남편한테도 친한 친구에게도 자세히 한번 도 한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오히려 어렸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남이 알면 안 되는 사람처럼 실제와는 다르게 밝고 아무렇지 않게 현재에 충실하게 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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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살이 될 때까지 할머니댁, 고모네 그리고 작은엄마 집 등을 오가며 살았다. 1년도 못 채워서 매년 떠밀리듯 짐짝처럼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 집 저 집을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너무 어릴 적은 당연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4살 때쯤 누군가 할머니 댁으로 전화가 와서 내가 너의 아빠다 또는 엄마다 하는 식의 전화를 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어색한 몇 마디가 오가고 전화를 끊고 나면 할머니는 한 숨을 푹 쉬면서 네 엄마 아빠는 언제 온다고 하냐고 물으시곤 했다. 내 기억의 시작에는 아빠와 엄마는 어떤 일인지 없고 난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아빠나 엄마 같은 사람의 전화를 받았던 날 밤에는 나는 불만 끄면 울어대서 할머니가 전기세 나오는데 뭐가 무섭다고 찔찔 짜냐고 했던 말들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4살짜리 눈에 비친 불 꺼진 방의 풍경은 꼭 귀신이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달빛이 창문 틈으로 세어 들어와 비추면 벽에 걸려 있던 할머니 롱 카디건이 곧 검은 유령으로 변해서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내 감정을 이해해 주거나 무서움을 공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작은 아빠와 엄마댁에서 살 때는 사촌 동생들이 어찌나 나를 놀리고 때리는지 남자아이들의 짖꿎음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맨날 당하기만 했었다. 사촌 남동생들이 때리고 괴롭힐 때마다 작은 엄마에게 말해봤지만 동생들이 몰라서 그런다고만 말할 뿐 아무런 조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사촌 동생이 괴롭힐까 봐 무서워서 혼자 동네 입구에 나와서 혼자 있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 들어가서 자곤 했다. 그러다 사촌 남동생들이 때리면 그냥 맞고 혼자 감정들을 처리하면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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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조차도 기억하기 싫었던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회피하고 싶은 감정과 화나는 감정등 나도 명명할 수 없는 오만가지의 감정들이 내 속에서 꿈틀 되는 것을 느꼈다. 상담사 선생님은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이냐고 감정에 이름을 붙여 보라고 했다. 나는 한 참을 생각하고 감정에 이름을 붙이려고 노력했지만 난 결국 한 단어로 무슨 감정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다만 ' 기억하기 싫은 감정 '이라는 것 밖에는 모르겠었다. 그리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가슴이 뛰고 공황발작이 올 것처럼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하지만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렇게 첫 심리 상담 수업은 생각하기도 싫어서 기억 저 너머로 꼭꼭 숨겨 놓았던 기억의 실태래의 끝을 잡고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린 듯 괴롭게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어린 시절 내 눈으로 보고 들은 것들의 잔상들이 아른거려서 혼이 났다. 나는 그렇게 며칠 동안 아주 깊숙이 넣고 꽁꽁 잠가버린 내 어린 시절 기억을 생각해 낸 것이 괴롭기까지 했다.



오늘 아이의 기억 속에 어떤 감정을 심어주었나요?
오늘 당신의 감정은 안녕하십니까?









이미지출처: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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