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젠 없다

잊을 줄 알았는데 다시 보고 싶어졌다

by 이도연 꽃노을






다 잊을 줄 알았다




모처럼 지연은 한가한 주말 아침을 맞았다. 누워서 뒹굴 하다가 메신저에 많이 와있었던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지연은 컴퓨터를 켜고 앉아서 오래된 메신저에 로그인을 했다. 받은 쪽지를 클릭해서 열었다. 지연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없을 만큼 많은 쪽지들이 있었다. 대부분 승빈에게 온 것들이었다. 승빈에게 제일 마지막으로 메시지가 온 것이 6개월 전이었다. 마지막 메시지의 제목은 ' 이젠 안녕 '였다.


지연은 클릭을 하지 않고 지우려다가 마지막 메시지를 클릭을 했다.




지연이에게,


이 메시지를 볼 때쯤이면 난 아마 한국에 없을 것 같아.

너와 내가 자주 이메일을 주고받던 이메일에 편지를 보내도 넌 읽어 보지 않더라.

그래 이제 와서 내가 무슨 말을 너에게 하겠어...


술 먹고 전화한 것도 그리고 다 끝났는데 이렇게 질척 거리는 것도 너에겐 예의가 아니겠지.


마지막으로 단 한 가지만 알아주면 좋겠어.

난 너를 잊은 적 없어. 답신이 없으니 난 혼자 미국으로 가.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을 생각이야.

부모님께도 결혼 같은 건 꿈꾸지 않도록 이야기하고 떠나는 길이야.

항상 사랑했고 늘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게...


너의 인생에 제일 힘든 순간 너의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어디서든 행복하길 바래. 안녕


승빈이가.





지연은 메시지를 읽고 재빨리 휴대전화에서 동기들 연락처를 찾아 혁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 혁아, 너 승빈오빠 소식 알아? "


" 어. 미국 간다고 얼마 전에 출국했어. 이젠 한국엔 안 올 사람처럼 송별회도 다 하고 갔는데.. 왜?"


" 아.. 아니야. 근데 미국 어디로 갔는데? "


" 몰라. 그런 자세한 건...."


" 알겠어.. 말해줘서 고마워. 또 연락하자."


지연은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 한국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빠가 이젠 여기 없다니....'


지연에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렇게 술 먹고 전화를 하면 매몰차게 끊었던 지연은 온데간데없고 소중한 애착 인형이라도 잃어버린 듯 지연은 슬펐다. 승빈이 보고 싶어졌다.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니 절망스러웠다. 지연은 출근해서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혹시나 몰라 메신저에 로그인을 하고 접속을 해놓아도 승빈은 항상 로그오프 상태였다. 승빈이 정말 떠났고 이젠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는 생각에 지연은 회사 생활도 염증을 느꼈다. 아파서 연차를 쓰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지연은 예전에 어학연수를 떠나면서 만들었던 옛 이메일 계정을 찾아서 로그인했다. 지연은 이메일들이 도착한 날짜를 보고 눈물을 터뜨렸다. 모든 이메일은 9월 19일에 도착한 이메일들이었다. 2000년 9월 19일, 2001년 9월 19일, 2002년 9월 19일........ 2005년 9월 19일. 모두 지연아 생일 축하해라고 적혀 있었다. 승빈은 지연이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하는 순간에도 지연의 생일을 제일 먼저 축하하기 위해 0시가 넘은 시간에 이메일을 보내왔었다.


그리고 ' 인천공항에서 기다릴게 ' 제목의 이메일을 발견하고 지연은 클릭을 해보았다.




지연이에게,


나 일주일 후에 샌프란시스코로 떠나. 이게 아마 네게 보내는 마지막 이메일이 될 것 같아.

나 버리고 나 혼자 풀쩍 떠나려 했는데.. 아무래도 난 너 없이는 못 살 것 같아. 알아 이기적인 것도 알고 네가 당황할 것도 아는데 나도 이런 내가 싫어.


비행기 티켓은 일주일 후 오후 2시 비행기야. 너도 나와 생각이 같다면 정오까지 인천공항으로 와줘.

기다릴게. 그때까지만. 그래도 네가 오지 않는다면 인정할게.


사랑했다. 사랑한다. 늘 생각하고 사랑할게.


승빈이가.



이미지 첨부에는 두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지연은 첨부파일을 클릭해 보았다. 컴퓨터 화면에 꽉 차게 보인 것은 지연과 승빈의 이름이 적힌 비행기 티켓 두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지연은 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 서로 다 잊을 줄 알았는데.. 아니, 난 잊었다 생각했는데. 오빠가 한국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두렵고 무서워...'


지연은 이미 지나버린 비행기 티켓의 날짜와 시간을 바라보면서 오열했다. 이제 보고 싶은 승빈은 어디에도 없다. 늘 지연이가 놀러 가던 그 집에 계속 살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같은 업종에 종사하다가 한 번쯤은 마주칠 줄 알았다. 혹 결혼 소식이라도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모두 지연이만의 착각이고 걱정이었다. 그렇게 2005년 지연의 겨울은 누구보다 춥고 스산했다.






< 다음 편에 계속 >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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