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헤어짐
사춘기가 뭔가요? 일상이 전쟁인데...
수요일 아침 아들은 등교시키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화장을 하고 심리치료 센터로 갈 준비를 한다. 도착하니 심리 상담 선생님은 이미 와 계셨다.
" 일주일 동안 잘 지냈어요? "
" 네... "
" 핀란드에서는 몇 년을 살았나요? "
" 3년을 살았습니다."
" 3년 동안 핀란드에 살면서 어땠나요? 그 시절로 돌아가서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 "
갇혀버린 내 영혼
핀란드에서 삼 년은 내게 생존이었다. 컴퓨터나 전자 사전이 없던 내 중학교 시절은 과제하는 데만 4시간이 걸렸다. 일일이 단어를 찾아서 지문과 문제를 이해해야 뭔가를 쓸 수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 개인 과외를 받는 날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ESL과제에 본 학년 과제에 난 영어만 보면 울렁거릴 정도로 멀리가 나는 듯했지만 안 할 수도 없었다. 바로 다음 날이면 이 과목 저 과목에서 과제해 온 것을 발표해야 했기 때문이다. ESL 수업을 1년을 받는다 해도 과학과 세계사 과제를 하기에는 내 영어 실력은 늘 부족했다. 미국 선생님들은 그런 나를 강하게 키우셨다.
잘 모르겠다고 수줍게 대답하는 나를 할 수 있다면서 10분 15분씩 기다려 주시곤 했다. 아이들도 내가 언제 말하나 기다리면서 인내심을 보여 주었지만 난 그 순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나를 배려한다고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기다려 준 것을 알지만 사춘기 청소년이었던 나는 형벌을 서고 있는 것 같이 느꼈다. 그럴수록 나는 영어가 많이 좌지우지되지 않는 과목들에 집착을 했다. 난 바보가 아닌데 왜 여기서 언어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죽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 정서적 어려움을 토로해 봤자 영어를 빨리 배워야 한다면서 집에서도 이제 영어를 쓰라는 아빠의 말씀은 나는 점점 더 위축되고 벙어리로 만들었다. 난 그 후로 몇 개월 간을 시위하듯 집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영어라는 섬에 갇혀서 아무도 구해 줄 수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익숙해지니 안녕
시간은 더디게 갔고 난 인정하기 싫었지만 영어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때부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난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그 결과 난 5년 과정이었던 ESL을 3년 만에 최상위 단계까지 올라가는 결과를 얻었다. ESL시간 보다 정규 수업에 들어가는 횟수가 월등이 많아졌고 친구들과도 농담을 할 정도로 영어 실력이 늘었다. 나를 동양인이라고 놀렸던 핀란드 아이랑도 그때 왜 그랬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우린 서로 오해도 풀었다. 그 녀석은 파르르 떨면서 반응하는 내가 그거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손자국이 한동안 없어지지 않아서 창피했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언어가 얼마큼 되니 마음도 편해지고 안정이 되려고 할 때쯤 또다시 난 부모님께 귀국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익숙해질 만하니 안녕이라니... 나는 아빠의 직업 때문에 내 삶이 좌지 우지 되는 것 같아서 분노에 찼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마지막 날을 난 선명이 기억한다. 오해를 풀고 친하게 지냈던 금발의 핀란드 남자아이와는 서로 정이 많이 들어서 펑펑 울었다. 당시에 썸을 타고 있던 안드레아와도 이별해야 했고 주한 미군 아빠 때문에 한국에 살아본 경험으로 나를 많이 챙겨 주었던 미쉘과의 이별은 내 심장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3년이 되어서 한국에 돌아가게 되는 날만 기다렸던 나는 그렇게 마지막 날에 많은 아쉬움과 눈물이 날 줄 몰랐었다. 분명 아쉬움의 눈물도 있지만 죽도록 노력해서 영어를 할만하니 다시 한국에 가서 적응할 생각이 분했는지도 모르겠다.
뜬금없는 춘천
그 후 2주 후에 우리 가족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원래 살던 서울집으로 다시 가는 건가 싶었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빠가 강원도 춘천으로 발령이 나신 것이었다. 강원도 춘천은 가본 적도 아는 사람도 없는 도시였다. 그런데 또다시 새로이 내가 적응하고 살아야 할 곳이 나의 선택이 아닌 또다시 아빠의 직업 때문에 정해졌다. 그것을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정말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2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매일 잘 때마다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그땐 한 참 그럴 10대여서 그랬을까 난 위축되고 새로운 세상에 또 한 번 내 던져지는 것이 두려웠다. 아마 INFJ의 성격을 가진 내게 어렸을 때부터 주어진 삶은 나와 맞지 않는 방식과 환경이었던 것 같다. 매일이 도전이었고 매일이 변화였다. 그리고 매일이 이별이었고 친구는 없었다. 이메일이나 SNS가 그때 있었더라면 친구들과 연락을 할 텐데 난 성인이 된 지금도 친구가 별로 없다. 잦은 이사와 해외 발령으로 내게 남은 건 혼란과 외로움 그리고 분노뿐이었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환경과 상황에 던져져
닥치고 존버해야 했던 내 십 대 시절에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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