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를 지킬 것인가? 약을 복용할 것인가?
한계에 도달한 임산부
임신 6개월쯤 나는 남편에게 울면서 말했다. " 임신을 중단하고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아. " 그때 남편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임신 전보다 8킬로 빠져서 리즈 시절보다 날씬해진 나를 보면서 남편도 너무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섣불리 어떻게 하자고 내게 답변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산부인과에 전화해서 상담을 했다. 공황발작이 너무 오고 잠도 못 자고 힘든 상태인데 이번 임신을 포기하고 내가 먼저 살아야 할 것 같다고. 그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지금 아이를 포기하는 건 낳을 때와 똑같이 촉진제를 맞고 출산을 해야 하는 거라고 설명해 주셨다.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임신 초기여서 아이를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듣고 나는 무지 충격적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포기하는 대신 인지행동 치료사와 예약을 주선해 주셨다.
임신 후 처음으로 아주버님께 SOS를 했다. 일상이 안되다 보니 자꾸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고 하니 아주버님은 두 명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고 언제부터 힘들었냐고 물으셨다. 사실 임신 초기부터 힘들었는데 참았다고 하니 이젠 더 이상 참지 말고 약을 복용하는 것이 더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하셨다. 전에 먹던 자낙스와 리보트릴은 등급 때문에 복용이 불가능했고 그나마 B등급에 속해 있는 '졸로프트'를 추천해 주셨다.
약을 손에 넣고도 이걸 정말 먹어애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 인가 며칠을 생각을 했다. 하지만 꼭 죽을 것만 같았던 나는 아주버님의 조언대로 두 명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셈이나 더 이상 고집 피우지 말고 약을 복용하기로 결정했다.
해파리가 날아다니는 환각
내가 살자고 이걸 먹고 나중에 아이한테 장애가 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서도 나는 너무 힘이 들어서 약을 복용했다. 약만 먹으면 바로 잠도 자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약을 점점 증약하면서부터 나는 허공에 해파리가 날아다니는 환각에 시달렸다. 처음엔 꿈인 줄 알았다. 허공에 손가락으로 날아다니는 해파리들을 만져 보려고 하니 손가락 사이로 연기처럼 빠져나갔다. 그래서 남편한테 해파리가 날아다닌 다고 이야기하니 남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다가 한국에 아주버님께 급히 전화를 했다. 약을 증량하고 생긴 부작용인 것 같다. 약이 적응하는 기간이 한 달 정도 필요하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일주일 정도 그 약을 복용하고 중단했다. 해라피가 날아다니는 환각 증세는 나아질 기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공황발작에 환각에 더 힘이 들었다.
몇 년 전 먹었던 자낙스와 리보트릴처럼 별 부작용 없이 단번에 공황이 제압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틀렸던 것이다. 약을 먹어도 부작용으로 더 힘이 들자 오히려 단약을 한 후 차라리 그냥 견디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 순간 절망도 있었지만 오히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4 개원만 어떻게 버텨 보자고 생각하며 다시 힘을 냈다. 난 오히려 태아에게도 죄책감 갖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때 선명한 태아의 태동이 느껴졌다. 자주 태동이 느껴질수록 두려웠지만 내가 정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동이 아이가 엄마에게 보내는 응원같이 느껴지면서 각오를 더 다졌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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