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행동 치료와 동의할 수 없는 자국민 보호 동의서
금발의 인지행동 치료사
산부인과에서 예약해 준 인지행동 치료사를 만나러 갔다. 편안한 인상에 호감 가는 인상의 금발의 인지행동 사는 여자 선생님이 셨다. 영어와 한국어 통역사도 배정이 되어있었다. 나의 별도의 요청이 없었는데 그렇게 까지 배려를 해준다니 너무 감사했다. 통역사와 치료사 그리고 나는 간단한 인사와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스브레이킹을 했다. 그리고 첫 수업이 끝날 쯤에는 비상약이라고 하면서 급할 때 먹으라고 '알프라졸람'성분의 약을 처방했다. 응급약을 먹지는 않았지만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름 위안이 되기도 했다.
인지치료는 치료사가 영어로 질문하면 내가 알아듣고 대답만 한국말로 하면 통역사가 영어로 번역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외국에서 살았던 어렸을 적 경험이 있기에 치료사가 물어보는 질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2~3회 차가 되었을 때 점점 깊은 대화나 세심한 감정 설명을 할 때에는 통역사를 한 번 거쳐서 번역이 되니 점점 내가 실제 겪은 느낌과 거리가 벌어지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난 그때 깨달았다. '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은 원래 어렵구나.' 영어라서 특별히 어려운 게 아니라 한국말로도 보이지 않는 느낌과 생각을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겪은 사람이 설명해도 어려울 것을 실제 겪지 않은 통역사가 내 단어에 의존해서 번역을 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4회 차부터는 내가 직접 치료사와 이야기했다. 사춘기 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빠 일 때문에 외국에 나가서 살아야 했던 것을 원망했었는데 그때 배워둔 영어가 내 병을 치유하고 설명하는 곳에 그렇게 유용하게 쓰일지 몰랐다. 그래도 미국인이 아니기에 부족한 점이 있었기에 EDMUND J. BOURNE가 쓴 < The Anxiety & Phobia Workbook >라는 셀프치료 책을 아마존에서 구입했다.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서는 셀프로 공부를 하는 게 보편적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구입한 책이었다. 공황장애와 정신과에 관련된 단어들을 많이 습득할수록 나는 치료사와 자연스럽고 정확한 소통을 통해 인지행동 치료에 효과를 보기 시작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은 불안장애 우울증 또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임산부에 무상으로 정신과 처방과 인지치료를 해주는 제도가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었지만 아이는 미국에서 출산할 것이기 때문에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동의할 수 없는 자국민 보호 동의서
임신 7월째 쯤 되자 산부인과에서 한 동의 서류를 내게 내밀었다. 한인 산부인과 의사는 무슨 동의서 인지 내게 한국말로 알려줬는데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아이를 출산 후 엄마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심해서 아이를 양육할 상황이 되지 않으면 나라에서 지정한 기관에서 아이를 키울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의 아이를 키워주니 고맙다는 생각은커녕 미국의 정부에 아이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협박처럼 들렸다. 엄마와 아이의 생 이별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모성애가 뿜어져 나오면서 어떻게 해서든 공황장애 치유를 해야 하다는 목표감이 생겼다. 아이를 위해 내가 공황장애에 먹히면 내 아이와 같이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 동의서는 나를 엄마로서 힘을 낼 수 있도록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주었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됐다. 내 아이와 내 가족을 위해 불안과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야 할 이유를 내게 주었다. 나는 미친 듯이 공황장애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481페이지에 달하는 셀프 워크북을 씹어 먹을 듯 내 것으로 만들었다. 내게도 모성애라는 것이 가슴 깊은 곳에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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